마을명 : 함열읍 > 용왕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함열읍 > 용왕마을
구술자 박현신(1950)남자
구술자 박성용(1942)남자
구술자 박철신(1957)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철도 이야기
구술일시 2012-08-17
비고 면담장소 : 함열 용왕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17일 10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용왕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현재 용왕제(龍旺堤) 자리에 못이 있었는데 그 못에서 용이 올랐다고 함 ‘왕(旺)’자는 ‘왕(王)‘자를 쓰지 않으려고 바꿔 놓은 것. 예로부터 이 마을 사람이 오래 살기로 유명한데 지금도 80세 이상의 노인이 많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카톨릭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 때 피난온 사람들이 정착해서 만든 마을이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장터거리: 예전에 용왕마을에서 석치로 가는 길목에 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 점촌: 그릇을 만들던 마을이다.
- 할배바위: 할아버지 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 여우골: 여우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은반제: 학선골 방죽을 부르는 명칭이다.
- 학선마을: 붓을 만들었던 마을이다.

3) 전설 및 민담
- 왕이 살았다는 흔적의 돌: 돌에 말굽의 흔적이 있고 마을에서 구비로 전해 졌다고 한다.
- 천주교 박해: 천주교 박해 때 사람들이 피난와서 도자기를 구우며 연명했다고 전해진다.
- 돌산 장수와 흑산 장수 이야기: 흑산에서 돌을 던져서 흑산하고 독산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 용왕산: 용이 산에서 살았다고 하고 왕들이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 도깨비 불: 날이 흐릴 때 논에서 나왔다고 한다.
- 구렁덩이: 정동마을에서 신장로로 나오는 작은 길 그곳에서 귀신이 나왔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 도깨비: 지게를 지고 오면 도깨비가 지게를 자꾸 잡아당겨서 몸살이 난다고 한다.
- 혼불: 집에서 불이 나가면 누군가 죽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소쩍새가 울면: 소쩍새가 우는 것으로 풍년과 흉년을 점 쳤다고 한다.

4) 민속
- 만두레: 마을 주민이 다 같이 모여서 논과 김을 매는 행사이다.
- 대동계: 예전부터 마을에서 대동계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5) 철도이야기
- 기찻길: 기찻길이 원래는 함라에 놓이려고 했는데 함라 사람들이 망한다고 해서 함열쪽으로 기찻길이 놓였다고 전해진다.

구술채록

A1 박현신 (65) 1950년
A2 박성용 (71) 1942년
A3 박철신 (58) 1957년


B1 박태건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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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호수 이름이 뭔가요?

A2: 여기 연못은 그냥 말 그대로 연못이고.

B3: 아-- 그럼 산은 뭐라고 했나요?

A2: 산은 그전부터 있었고 ‘용왕산’ 그래서 ‘용왕산’이고 ‘용왕마을’이고 그렇게 되.

B3: ‘용왕산’ 밑에 ‘용왕마을’이군요.

A2: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뭐 특이하게 우리가 더 깊이 알고 있는 것은 없고 내력 역사로 말하자면 그렇게 내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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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 돌 이야기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A2: 그 그것은 바위에가 이렇게 왕들이 살았다는 흔적 조금씩 있어 이렇게 그래서 우리는 이런걸 보고 이케 살았는게비 하고 인식을 하는 것이지 역사의 내력 같은 거 마을에 기록 같은 건 전혀 없고 그냥 흘러흘러 내려온 마을 풍문으로 내려온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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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러면 ‘용왕제’ 같은 제사도 지내셨나요?

A1: 용왕제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 것은 않고 그전부터 피난민들이 와서 살은 정착촌이라서 그런 것은 없고 여건에 따라서 저그 저 이게 강당인데 성당이 아니고 그때 마을 유지였던 강당 이였는데 이제 저 세 번째 바뀐 거여 살면서 맨 처음에는 기둥나무를 나무로 지어서 지붕을 덮었거든 그래 가꼬 엮어서 마룻바닥 놓고 그렇게 해서 우리 교인들이 배우고 미사도 드리고 그랬는데 그 이후에 그것이 너무 낡았다 해 가꼬 지금 건물로 이렇게 시멘트 건물로 바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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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그러면 옛날에 어르신들에게 들으신 이야기는 없나요?

A2: 그래서 지금 내려왔던 것은 박해 때 피난을 와서 여기서 정착을 한 것 그뿐 이였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여그다가 안여동 성당을 짓기 전 블라드 신부님이 여기다 성당을 짓자 했는데 여건이 안되야가 반대를 한 것 같애 그래서 그것은 못 지은 것이고 거그까지는 자세한 건 모르고 다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뭐 근거가 남아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B3: 명절 때 풍물 같은 것도 치셨나요?

A2: 치죠 풍물을 지는데 이상스럽게 남자가 별로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다 도시로 나가고 나이 먹은 사람들 저가 인자 일흔하나인데 밑에 쪼끔 나이 어린사람들 쪼끔 몇 분은 있어요 만약에 우리 나이 이런 사람들이 돌아가신다고 보면 젊은 애들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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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옛날에는 어땠나요?

A2: 옛날에는 집단위로 많이 살았죠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냐면 풍물 쳐가꼬 두레도 나고 우리 마을에 카톨릭 신자로 사흘씩 ‘설맥이‘를 했어 논에 김매고 그 ‘만두레‘라고 하는 것이죠 모 심어놓고 ‘만두레‘ 풀맥이 작업을 하고 그 때 풍물치고 괴기 잡고 사흘씩은 했어요 그때 한 오십 마리씩 먹었다는데 그것보다 쪼끔 없을 때도 있었지만은 그러믄 연못도 물도 우물을 퍼내고 해서 시암 판다고 그러죠 시암을 물을 개조한다고.

B3: 그러면 옛날에는 제사 짓는데 그런 것은 아예 안했나 봐요?

A2: 그러니까 그런 것을 이렇게 했었다고요. 저도 봤고 사람들 다 모여서 우물을 퍼내고 샘을 판다고 드러운거 다 청소를 하고 그렇게 해서 사흘씩 했어요 사흘씩 잔치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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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굉장히 사람들이 많이 살았나 봐요?

A2: 그때만 해도 한 60가구 넘죠 집집마다 다 살았었으니까 그 때는 어린애들도 다 살고 그랬으니까 학교도 다 집에서 다니고 그 때는 소자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B3: 어렸을 적에 ‘용왕산’가서 많이 놀고 그러셨겠네요?

A2: 뭐 그렇죠.

B3: 주로 ‘용왕산’ 어디서 노셨어요?

A2: 용화산 산 날맹이서 놀기도 하고 주로 여기서 놀았습니다 터에서 그때는 여기 건물이 없었고 저그 건물만 있어가지고 장소가 넓었어 여그서 많이 놀았지 넓으니까 현제 집을 지었지만은 동네 마을에가 묘지 터가 있었지 달밭이라고 거그가 묘지가 한 채 있었는디 그게 이름이 달밭이여 객지에서 여기 오기전부터 아마 묘지가 있었나봐 그래서 동네에서 여기다 집을 짓고 고것만 냉겨놓고 있었는디 지금은 없어졌어요 ‘달밭’ 거그서 많이 놀고.

B3: 거기가 왜 ‘달밭’이에요?

A2: 거그서 묘지에서 그냥 아이들 놀고 하는 것이여 숨바꼭질도 하고 제기차기도하고 뭣도 하고 이것저것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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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용왕에 ‘장터거리’가 있었나요?

A2: ‘장터거리‘가 저 짝 밑에 여기에 그러면 저 짝 석치에서 저 짝으로 넘어가는 질이 있어가지고 거기서 소도 팔고 장터가 있었어요 우리는 그런 기억은 없고 그런 터가 여그가 있었어요 ‘장터거리’라고.

B2: 마을사람들도 많이 가서 장사하고 그랬겠네요?

A2: 물론 그때는 그랬겠죠 지금은 거그가 묘지되고 산 밭 되버리고 다 변경되버렸어요

B3: 어르신 그러면 거기서 무엇을 많이 팔았다 그런 이야기 들으셨어요?

A2: 그런데 그것을 팔았다 어쨌다 그것은 못 듣고 ‘장터거리’ 거그서 구루마 우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그런 길이 있었었으니까 여그서 ‘장터거리’라 전래만 들었지 우리는 보들 못했으니까.

B2: 어르신 그릇 같은 것을 많이 팔았다는 이야기 들으셨어요?

A2: 그니까 저 짝 마을 여기 부락에서 구할 수 있는 그릇은 옹이그릇을 저 짝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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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저 촌은 뭐라고 했나요?

A2: ‘점촌’ 지금은 부락으로 길을 뚤어 버렸고 우리 소속 마을이지만은 옛날에는 석치쪽으로 돌아 갔어.

B1: 그럼 왜 ‘점촌’이라고 불렀나요?

A2: 점들이 많아서 ‘점촌’.

B2: 그런데 왜 점일까요?

A2: 거그가 가마터가 옹기가마 있는 거그가 전부 쌓여 있어 그 이후로는 옹기그릇 굽는 것은 못 봤는디 거그 가마터에가 뭐 했냐면 한전막이라고 있었어요 한전막 사람들 거그 들어가서 찜찔하고 나오고 우리는 그것은 봤지만은 옹이만들었다는 것은 예전에 들었지만 지금은 그릇 깨지고 뭐더고 한거 사발깨진거 거그 쌓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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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제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에 천주교 박해 받던 사람들이 와서 그릇을 구웠다고 들었는데요.

A2: 박해자들이 와서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이지 그러니까 그것을 하다 생계가 좋아지니 그것을 폐기처분하고 논밭을 구입해서.

B2: ‘점촌’도 천호성지처럼 새로 생긴 마을인가요?

A2: 천호성지도 애당초에는 그 박해 받아서 피난처 저 밑에가 옹기그릇이 있었죠 그 터에는 없었고.

B2: 그럼 ‘점촌’은 사람들이 피난을 와서 만들어졌는지 예전부터 있던 마을인지 알 수 있을까요?

A2: ‘점촌’은 예전부터 있지는 않았고 피난을 와서 만들어진 마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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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그러면 여기서 ‘매교’마을은 가깝나요?

A2: 매교 저쪽 오다보면 백제장례식장 있죠? 그 마을이 그 안으로 매교마을.

B2: 그러면은 ‘석치’와 ‘매교’마을 사이에 도깨비를 만난다 그런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A2: 도깨비를 만났다고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그 중간 사이가 ‘토탄’이 많이 나왔어요 땅에서 ‘토탄’ 논바닥에서 고걸 케서 많이 연료로 사용했거든 고것은 있어도 도깨비 이야기는 못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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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혹시 그럼 다른 마을하고 풍물도 치고 그런 것은 없었나요?

A2: 옛날에는 마을마다 다 두레라는 것이 있어가지고 마을마다 했고 그런 시합도 없지 않아 있었겠죠 다른 그런 시합하고 그런 것은 못 봤고 봤다는 것은 마을끼리 이렇게 마을마다 전부 논밭 있고 김매고 그런 것은 마을마다 다 있었어요 그래서 각 마을마다 풍물이 다 있어요.

B3: 8월 달에 익산에 모여서 씨름대회도 하고 그랬나요?

A2: 그건 우리 교회에서 있었고 면단위에서도 있었던가?

A1: 아니 근게 여기는 돌산이야기를 하는거 같은데 ‘돌산’이 있었어요 우리도 어렸을 때 추석 이튿날 그 위로 올라가서 사람들이 다 모여서 놀았지.

A2: 지금은 그것이 석산 개발로 산이 다 없어져 버렸어요 돌을 캐서 ‘돌산’이 참 아름다웠었는데 없어졌어요 산이 다 없어졌어요 거기에서 음력 보름날 낮에 올라가서 씨름대회도 하고 산도 타고 거기서 놀이도 하고 씨름 같은 것도 하고 바위 같은 것도 멋진 바위가 많았어요 ‘돌산’이라고 바로 저 앞에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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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돌산’에 어떤 바위들이 많이 있었나요?

A2: ‘할배바위’도 있고 ‘장수바위’도 있고 여튼 기괴한 바위들이 많이 있었어요.

B2: ‘할배바위’는 왜 ‘할배바위’라 하였나요?

A2: 할배 같이 생겨가지고 그게 산이 ‘돌산’이라하면 나무가 별로 없고 순 독으로 다 있어서 거그 바위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지 뭣 처럼 생긴 것은 뭔 바위 뭣 처럼 생긴 것은 뭔 바위 그렇게 부른 거지 소나무 같은 거는 별로 없었고 순 독 밖에 없었어.

A2: 그전에는 그 전설이 전설의 고향에도 한번 나왔었어 ‘돌산장수’ ‘흑산장수’ 해가지고 돌이 많았었는데 싸워가지고 장수들끼리 싸움해가지고 ‘흑산’에서 돌을 던져가지고 ‘흑산’하고 ‘돌산’이 바뀌었다고 하는 그래서 산은 진짜 좋았어.

B2: 그러면 바위에 신비한 힘이 있어 제사 드리고 이런 것은 없었나요?

A2: 그런 것은 없었고 계룡산 밑에 가보면 있는 바위 밑에 촛불 켜놓고 그런건 있었어.

B2: 어떤 바위에 있었나요?

A2: ‘장수바위’ 밑에 인가 위쪽 올라가는 그 쪽에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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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용왕산’은 왜 ‘용왕산’이라고 하나요?

A1: 그러니까 처음에 이야기 했다시피 용이 여기 산에서 살고 저기서 저 아 왕이 여기서 살고 용이 저그서 났다 그렇게 알고 있고 근게 아까 얘기 했던게로 바위에가 흠집이 생겼어 살았다 하니까 그런게비다 하고 그런거지 다른 흔적은 없어.

B3: 무슨 왕이 살았었나요?

A1: 그냥 왕이 살았다고 그래서 왕산이다 그래서 용이 나고 산이라고 하는 것은 ‘용왕산’ 여기는 용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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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이 근처 함열에 기찻길에 대해서는 아시나요?

A2: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함열 쪽이 아니라 함라 쪽이여 옛날 어른들이 양반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시커먼 기차가 다니면 여기는 망한다 이리로는 못 온다 반대했다 그래요 망한다고 안 좋다고 옛날 어른들은 뭐시가 지나가면 안 좋다고 그래가꼬 그리 파려다가 못 파고 함열 쪽으로 황동 쪽으로 난 것이죠.

B3: 함열 쪽에서는 반대를 안했나 봐요?

A2: 그렇죠 어기는 반대를 안 했죠 함라에서 반대를 한 것이지 여기 지역사람들은 반대를 안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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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럼 천주교가 들어오기 전에 ‘우렁절’이라는 절터는 없었나요?

A2: 절은 없었고 석산 개발을 해서 없어졌는데 거가 그 우리 어릴 적에 절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절은 아니고 어떤 보살이 거그서 여성보살 살았었어 조그만한 석불하나 모시고 오두막에서 살았던 적은 있어요.

B3: 혼자 그러고 산 사연이 있나요?

A2: 자식들도 있어 자식들도 있는데 그 사람이 뭔지는 몰라도 용왕산 중턱쯤에 토막집 하나 지어놓고 거기서 생활을 했었어.

B3: 보신 적 있으세요?

A2: 그렇지 그런데 석산 개발하면서 없어져 버렸지.

B3: 그 분하고 마을에서 얘기하는 분은 있었나요?

A2: 그러진 않았어 여기하고 거기하고는 거시가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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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어렸을 적에 아프고 그러시면 어떻게 하셨나요?

A2: 배 아프다고 그러면 할머니들이 내 손이 약손이다 고거 이외에 우리 어렸을 적은 함열 거리가 멀지만 버스도 없었으니까 걸어서 함열서 약 지어 오고 그랬었지 그때만 해도 함열면으로 되있으니까 의사도 있고 약사도 있고 그랬으니까.

B3: 함열을 걸어서 많이 왕래를 하셨나 봐요?

A1: 많이 걸어 다녔지 교통이 자전거도 없고 사람들이 걸어 다녔지 자전거도 요즘 개발되고 리어카도 개발되고 그랬지 예전에는 두 다리가 교통수단 이었지.

A2: 불과 여기 도로 그전에는 ‘신장로’라고 자갈 해 가꼬 도로가 그렇게 내가꼬.

B3: ‘신장로’요?

A1: 예전에는 지금처럼 도로 포장이 되있는게 아니고 ‘신장로’라고 말을 그렇게 했어 그러면 자갈을 깔아놓고 차가 다니게끔 그렇게 맨들었거는 그러면 각 부락별로 담당 했었어 어디서 어디까지는 어느 부락이 자갈을 깔아라 그것을 집집마다 호당 얼마씩 그 독을 주서다가 깔아주고 길이 움푹 패이면 매꿔 주고 그게 ‘신장로’여.

B2: 자갈을 어디서 구하셨나요?

A2: 길거리 산이나 주워다가 집에서 지게로 지어서 쌓아놓는 것이지.

A1: 그러고서 그 때는 전국적으로 다하니까 그 때는 포장이 되있질 않으니까.

B3: 끝나고 잔치도 했었나요?

A2: 잔치는 하지 않고 수고했다고 막걸리 한 통씩 해가지고 먹고 지금은 엠프가 있어서 건축시설에 방송도 하고 그랬는데 예전에 없어가지고 나팔이 있었어 ‘오포’라고 하는데 ‘오포’ 나팔같이 그것을 인자 부르면은 피익 소리가 났어 그걸로 인자 말하자면 전파 그걸로 활용을 했어고 그 뒤에 인자 풍물이 있어서 징을 쳤었어 그럼 뭔 일이 있을 때 징을 치면 사람이 모이고 그런 걸로 연락 방법을 그런 걸로 했었지 그 뒤에 인자 엠프가 들어와서 편하게 말로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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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옛날에 여우에 관한 이야기 들으신 것 있으세요?

A1: 여우는 여기서 살았었지 여우는 살았었고 ‘여우골’이라는 곳에서 여우가 많이 살았어 여우한테 뭐 홀렸다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어도.

A2: 도깨비 이야기 다복이네 집 자리 거그 가다가 보면.

A1: 그게 그전에 보면은 ‘도깨비불’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이 사람의 뼈가 드러나가고 그것이 밤에 주위에 보면 주위에 환하게 인이 비춘다고 그려 그게 ‘도깨비불’이라고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B2: ‘도깨비불’이 어디에 많이 나왔데요?

A1: 저 짝 음침한 ‘달밭’부분 아까 이야기 했던 ‘달밭’부분 대나무도 있었고 좀 음침했지 산 끄터리 부분에 보면.

B2: 그럼 ‘도깨비불’이 언제 많이 나왔었나요?

A1: 날 구질 때.

B3: ‘도깨비불’ 이야기 더 해주실 수 있나요?

A2: 그니까 거그서 모여가고 놀고 거시기 하는데 이렇게 논이 있으면 그 위에 후라쉬가 있었나벼 그런데 그것이 꺼졌다 켜졌다 하니까 도깨비 어쩌고 찾고 놀라고 그랬지.

B2: 어르신 예전에 집에 구렁이가 살고 그런 이야기는 없었나요?

A2: 이 부락에서 내가 살면서 구렁이가 살았다 소리는 못 들었어도 내려오는 이야기로 집에 구렁이가 있으면 내쫓지는 말고 그냥 내버려둬야 된다는 그런 이야기는 들었고 아까 도깨비불 같은 것도 보면은 어렴풋이 어른들이 ‘도깨비불’ 하면은 우리도 밤에 무섭고 그러거든 근데 도깨비불이라고 한 것은 같은데 밤에 불이 지나가면 도깨비불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사람이 죽어서 뼈에서 나오는 인이 밤에 비친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거든 아마 고것이 밤에 움직여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은 좀 그렇게 하는데 어렸을 적 기억은 잘 모르겠고 들은 이야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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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학선골’은 어디인가요?

A1: 아까 흑산 이야기 했던 북방 흑산 중간 사이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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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르신 저희가 옛 지명을 조사하고 있는데 옛 지명 아시는 것 있으신가요?

A2: 인자 익산으로 통학 할 때 걸어서 했는데 그 길이 ‘구렁덩이’라는 것이 있었어.

A1: ‘구렁덩이’라는 것이 어디냐면 여기 정동마을에서 신장로로 나오는 길이 중간에 되어있어 소록에 그것을 구렁덩이라고 하는데 구렁이가 움직였던 그런 뜻으로 ‘구렁덩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구렁덩이’라고 하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었지 뭐 전설은 못 들었고.

A2: 거기가 쪼끔 안 좋았었어 사람들이 다니기가 장날에 늦게 온다 던가 그러면은 거기서 귀신이 나온다거나 그랬었어 길이 쫌 옆으로 산이 있어가지고 지금은 커져가지고 없는데 요만한 소록길인데 장에 인제 갔다가 늦게 오다 도깨비에 홀려가지고 어쩌네 그런 소리도 많이 나왔어.

A1: 그게 지름길 일종의 장날 장보고 지름길이라 해서 가깝게 가는 것이여 길이 야산에가 있는데 옴폭 팽겨버렸어 근게 양쪽에 야산이지만은 옴폭 패겨 져서 꼬부랑하니 걸어 댕기고 그런 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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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도깨비’에게 어떻게 홀렸는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A2: 지게지고 오는데 누가 자꾸 지게를 잡아 댕겨 가지고 그렇게 해가지고 ‘도깨비’한테 몸살이 나가지고 그 뒤로 한 사흘 아파서 누워있어서 왜 그냐 했더니 나무도 팔고 그러고 오다가보니까 그 길이 좀 음침하니 안좋았어 지금도 쫌 거시기한데 그래서 나무를 팔고 오는데 자꾸 잡아 댕기는 거여 그래서 이 사람이 놀라고 그래서 몸살이 난거여 그래서 한 사흘씩 누워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있어.
B1: 그 이야기는 언제 들으셨어요?

A2: 어렸을 때여 어렸을 때 그래서 그 길을 밤 같은 때에는 잘 안갔어 그 길이 좀 안좋았어.

B3: 어르신 그 길 약도 좀 그려 주실 수 있나요?

(약도 그리시며 위치설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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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렸을 때 물놀이 같은 것도 많이 하셨나요?

A2: 물놀이 많이 했지 우리 여기는 여기 앞에 방죽이 있었는데 지금은 인자 없어 없어지고 인자 갈대가 자랐는데 이쪽 앞에 ‘학선골 방죽’이라고 있었어 우리는 ‘학선골 방죽’이라고 했는데 원래 지명은 ‘은반제’라고 했었어 지금은 없어 졌어 없어졌는데 거기가 물놀이하기 좋아 여기는 그전에 마름 같은 것도 많고 새우 같은 것이 있어가고 안좋았어 거그는 대체적으로 그런 장애물이 없어가지고 멱도 감았고 그렇게 ‘은반제’로 해가지고 학선골로 넘어가고 그렇게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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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학선골’은 지금도 ‘학선골’이라고 부르나요?

A2: 원래 지명은 학선마을이라고 해가지고.

A1: 그 마을의 전통은 붓을 많이 만들었죠 붓을 그 정통이 심화되어 있어가지고 그 마을은 거의 다 전체가 붓을 만들었어요 붓을 만들어서 팔고 익산 전라도권은 거의 다 거기에 만들어서 팔았을 거여.

A2: 우리 어렸을 때까지도 붓을 만들었어요 붓도 여러 종류로 해가지고 그 사람들이 지금은 모르겠는데 장인이라고 근데 그 사람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을 꺼여 붓을 참 많이 만들었어요.

(현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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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우리마을 ‘대동계’야.

B1: ‘대동계’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나요?

A2: 있지.

B1: 그러면 마을 전통이 상당히 오래된 마을인가 봐요?

A2: 우리 64년도에 ‘대동계’를 해서 ‘대동계’가 유지되고 있어요.

B1: ‘대동계’가 예전부터 내려온 건가요?

A2: 대동이라는 것은 집단에서 새로 이루어 진 것은 얼마 안됬고 아까 64년부터인가 그 때부터 밖에 안되었고 그 전은 효력이 없어요 효력이 없고 구두로만 했지.

B1: 마을에서 큰일을 할 때 조직이 있었나요?

A2: 그쵸 조직이 있었죠 우리는 이 마을은 전에는 어떻게 했는가 몰라도 우리 마을은 모든 일을 큰일이든지 뭔 일이든지 있으면은 대동에서 한다고 대동계가 지금까지 계속 1년에 한 번씩 해요 12월 달에.

(현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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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 지명의 유례나 민담 같은 것 더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A2: ‘광대골’.

B1: ‘광대골’은 어느 쪽을 ‘광대골’이라고 하였나요?

A2: ‘광대골’은 구렁목에서 나와 가지고 그 두라마을 들어가는 이쪽 익산주유소 사이에 있어 여기서 나가면은 여기서 삼례 쪽으로 나가다 보면은 저 여그가 그 두라마을 입구에 보면은 점멸등이 있어요 그 여기가 익산주유소고 이 사이를 ‘광대골’이라고 했어요.

B1: ‘광대골’에는 무슨 의미가 있나요?

A1: 그건 잘 모르겠고 여기가면 덕성면 밑에 보면 다 논의로 되있거든 그 때는 논 이아니라 야산으로 되있고 밭으로 되있고 그렇게 되있어서 지금은 변형이 많이 됐지 거기보고 광대라고 해가지고.

B1: ‘광대골’ 지형이 어땠었나요?

A2: ‘광대골’ 그 넓은 그런 뜻으로 내가 그렇게 봤는데 거긴 그런 것은 없어요 그랬는데 거기를 ‘광대골’이라고 했어요.

B1: 골이라면 골짜기를 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A2: 야산개발 이전에는 다 산이었어 산 박정희 때 신장로를 내면서 야산을 왠만한 야산을 다 논으로 만들었거든 그 전만해도 전부다 야산 거의 전부다 산이었다고 보면 되지.

B1: 그래서 전에 골이 있어서 광대 골이었을 수도 있고 고랑이 있어서 일 수 있고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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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또 다른 지명들은 없었나요?

A2: 그 석산개발을 하다가 그 독을 떨었다고 ‘독떤지’ 거기서 하다가 썩돌이 나오고 석질이 안좋으니까 손을 땠지 한 1년 정도 하다가 포기를 했지 발파만 조금 하다가 다 썩돌이고 다 우라배기고.

B1: 무엇을 ‘우라배기’라고 하나요?

A2: 그 돌이 깨끗하지를 못하고 얼룩덜룩하니 까만 그런 돌을 우라배기라고 했어 일본말이여 좋지도 않고 나쁜 돌이다 해서 우라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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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산에서 불이 내려오는데 불꼬리가 있으면 남자가 죽고 꼬리가 없으면 여자가 죽는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A2: 그것도 듣기는 들었는디 사람이 죽으면 집에 불나간다 하고 하잖아 우리는 그냥 그 이야기만 듣기만 했지 사람이 죽으면 집에 불나간다 큰 불이나간다고.

B1: 불이 어떤 형태로 나가나요?

A1: 그건 안 봤기 때문에 모르는데 불 나간다는게 형태가 좀 클태죠 그러니 사람들이 육안으로 보고 저기 불나간다 저기 불나간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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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마을에 눈이 어떻게 내리면 흉년이 들고 풍년이 들고 그런 이야기는 못들이셨어요?

A2: 그런 것은 못 들었어도 이런 이야기는 저 ‘소쩍새’가 소쩍소쩍 하면 솥이 적다 먹을 것이 없다 했는데 솥 적다 솥 적다하면 그걸로 풍년 흉년 가리긴 했어도.

B1: 그 이야기를 언제 들으셨어요?

A2: 어렸을 때부터 소쩍새가 울적에 소쩍다 소쩍다 하면 풍년이들고 소쩍소쩍 울면 흉년이 든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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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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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음식은 어떤 것을 어떻게 많이 드셨나요?

A3: 주로 음식은 각 지방마다 틀려서 먹지만은 여기는 박씨들이 좀 많아서 박씨들이 쫌 싱겁게 먹기보다 조금 짜게 먹는 편이여 그렇다고 많이 짠거 아니고 간을 더 줘서 먹는 편이거든.

B1: 어렸을 때부터 그러셨군요.

A3: 옛날에 동료들이 막걸리를 좋아했었지.

B1: 어떻게 도가가 있었나요?

A3: 그건 집에서 만드는 ‘일주’라던가 아니면은 그 집에서 독에 담가 먹는 그런게 있었잖어 옛날에 그런 일화로 ‘일주’를 못 담게 했을 때도 담아서 먹고 가정마다 그랬어.

B1: 아직도 술 만드는 방법이 전수가 되고 있나요?

A3: 옛날에는 담가서 먹었는데 누룩은 밀 같은 재료가 없어가지고 인자 누룩까지는 안 담고 시중에서 사다 재료가 없으니까 지금은 밀이 없어져가지고 누룩을 사다가 하지 나도 지금 해마다 가끔가다 한 번씩 끓여먹어.

B1: 큰 제사 있을 때 그럼 그 술을 가져다 쓰고 그랬나요?

A3: 그 정도까지는 않고 전부다 면에 가서 사다했지 큰 마을 잔치는 전부다 큰 행사 있고 그러면 술을 양조장에서 거시기해서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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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르신 성함을 이장님부터 말씀 해주실 수 있나요?

A2: 박현신이에요 65세.

A1: 박성용 71세.

A3: 박철신 58세

B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용왕마을


용왕마을 박성용,박현신


용왕마을 박현신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