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함열읍 > 역전동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함열읍 > 역전동마을
구술자 김명식(1941)남자
면담자 장윤준, 이순영
구술요지 마을 유래담
지명 유래담
민속
구술일시 2012-08-13
비고 면담장소 : 역전동 마을 김명식 이장 개인가계
면담시간 : 오전 11시
내용 : 지명유래 및 민속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역전동(驛前洞) : 함열역의 앞이 되므로 생긴 이름.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된 내용
- 역전동 마을 유래담 : 옛 지명은 정동이다. 물이 맑다는 뜻이며, 윗장터마을 아랫장터마을이라고 불렸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익산군청 소재지 : 지금 원광보건대 제2캠퍼스의 위치가 옛 익산군청이 있던 자리이다. 함열에 익산 군청이 있던 시절엔 익산의 중심지가 함열이였다.
- 함열역 : 예전에 웅포, 성당, 망성의 주민들이 함열역을 이용했으며, 그로 인해 당시엔 시장 상권이 많이 활성화 되었었다. 그러나 함열역에 정차하는 기차가 많이 줄어들고, 익산군청이 이전한 뒤 함열이 많이 쇠퇴하였다.
- 동지산 : 태목산이라고 불렀다.


3) 전설 및 민담 :
-석산 : 장수가 태어났다는 장수바위가 있다. 추석 이튿날이 되면 석산에서 함열 주민들이 모두 모여 큰 잔치를 벌이곤 했다.

구술채록

A1 김명식(72)-1941년

B1 장윤준
B2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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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원광대 대안문화연구소의 조사원 장윤준입니다. 함열의 역전동 마을에 대한 조사를 하려고 이렇게 방문하였습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1 :내가 소화 16년에 만주에서 태어났어요. 우리가 함열에서 정동이라는 동네에서 살다가 일정 때 만주 피난가서 산거지. 만주가서 내가 태어나고, 거기서 해방전에 다시 고향으로 온거야. 여기 정동이라는 동네가 우물정자에 맑을동을 사용하해서 물이 맑아서 정동이란 동네고, 여기 역전동은 역전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지 얼마 안되요. 옛날에는 윗장터 아랫장터 그랬어 이 함열이.
B1 : 함열이 옛날에는 대충 어땠나요?
A1 : 지금 여기 동지산을 태복산이라 그랬어. 거기를 가면은 양조장이 있고 장로교회 있는 길로 해서 그 위는 윗장터 그 아래는 아랫장터. 그 예전에는 역전이 이쪽에가 있었어.
B1 : 어르신 그러면 그림으로 그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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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역전동이 이렇게 된지가 지금. 익산시로 되면서 역전동이 되고 길 건너 역전있는 이가 역전2동이야 여가.
친: 그러면 이 지도를 보면 이쪽 지방에 장터가 꽤 컸었나봅니다.
A1 : 옛날에는 이쪽에 집이 하나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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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아까 어르신이 하셨던 말씀 중에서 만주에서 오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만주에서 이 기차를 타고 오신건가요?
A1 : 그렇지. 내가 애기 때 2~3살 때 왔으니까 그 신의주로 해서 기차로 왔지.
B1 : 원래 부모님 고향은 이쪽 익산이신가요?
A1 : 응. 정동이고. 여기 와리 75번지 바로 여기가 내 본적이야. 여기서 새로 집 짓고 여기서 초등학교 다니고 중학교 다니고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 서울에서 5.16 때 4.19 때 서울에 살았었어. 그래가지고 61년 2월 18일에 군대에 갔지. 그러니깐 5.16때 경기도 양평 군대 있었지. 여기 온지가 한 40년 돼. 64년에 왔으니까 38년 됐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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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에 함열역을 중심으로 해서 이쪽 동네가 부자도 많고 돈도 많았다고 하던데요
A1 : 지금 익산군청이 원대캠퍼스 자리에 있었거든. 그 이후 시(市)로 합병이 되면서 익산군청이 이사 했어요. 군청 자리에는 원대캠퍼스가 생기고, 읍사무소가 이사 왔고요. 지금 여기 이쪽에 군수가 여기 살았죠. 여기 이안에 둥지산에 옛날 삼광병원이라고 옛날에는 병원이 그 하나 있었어. 지금은 병원이 많지만 예전에는 병원이 흔하지 않았잖아요. 옛날에는 시장이 무지하게 잘 됐어. 7개 구역이 여가 중심지가 되어가지고 장날이면 사람이 밀려서 걸어도 못 다닐 정도로 잘 됐어. 근데 지금은 시장을 다시 지어놓고, 돈만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을 뿐 그전처럼 시장 활성화가 잘 안되네요.
B1 : 옛날에 군청이 여기에 있었으면 함열이 돈도 많고 사연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A1 : 군청이 있을 때는 발전도 되고 살기 좋았었죠. 그랬는데 시(市) 합병이후 익산시가 되가지고, 완전히 상권이 죽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가게가 반절도 더 없어졌어. 빈집도 꽤 많아. 지금 바로 옆에 가면 옛날 극장이 있어. 근데 극장을 서울 사람이 사 놓고 10여년이 됐는데 폐가를 만들어 버려가지고 말도 못해. 시에서 말을 해도 안되는거야. 역전동이 완전이 폐가가 많아. 여기도 있지 저 위에도 있지. 그러니까 영업이 안 되니까. 극장 손님이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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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에 혹시 철도에 관련한 재밌는 사건이나 안타까운 사연 같은거 아시는 거 있으신가요?
A1 : 철도관계는 내가 예전에 봉사를 많이 했지. 호남선 다니는 기차는 5대면은 1~2대밖에 정차를 안합니다. 그리고 전라선은 다 서는데 그니깐 새마을도 정차를 하지 않아요. KTX도 정차를 하지 않고. 함열역에서 왠만하면 강경으로 가버리잖어. 그게 아니면 익산으로 가버리고. 함열 역장이 새마을호가 하루 3번이라도 정차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했다 해요. 그래서 한 대인가 정차를 하더라고요. 주로 무궁화호 밖에 안 선다고. 10대가 서야할 역이 반절밖에 정차를 안하니, 기차역에도 굉장히 애로가 많지.
B1 : 예전에는 기차가 함열역에 많이 정차하지 않았나요?
A1 : 많이 정차했죠. 함열이 지금 가령 웅포, 성당, 망성 이런 사람들이 다 함열역으로 나왔는데 지금은 함열역에 기차가 정차하지 않으니 주로 강경이나 익산에서 많이 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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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에 사람이 많았을 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1 : 옛날 사람이 많았을 때는 극장이 있었으니깐 많이 왔고, 시장도 각 종류 시장이 잘 됐어 난장판도 있어가지고 잘 되고 말하자면 황등에 국밥집 같은거 있잖아. 그런 것도 한 두 개 이 안에 쭉 있고 시장이 참 잘 됐었어. 근데 지금은 대형마트가 있으니까 시장 상인들이 잘 안돼.
B2 : 익산역 저 쪽 이리시 쪽으로 합쳐져가지고.
A1 : 그럼 침체되있는건 말도 못해. 여기서 생활하고 사는 사람들 보면 여기 있는 사람들 자체가 시내를 나가. 물건이 없다고 하면서. 그니깐 여기서는 살기가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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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좀 전에 선생님 아버지 고향이 정동이라고 하셨었는데, 옛날에 함열이 어떤 곳이다 어떻게 이야기 하셨나요?
A1 : 옛날에 여기는 일정 때 가목이라고 농장을 했어. 함열 사람들이 거가서 일해주고, 대농이 사람들 집에 가서 일해주고 먹고살고 그랬었어.
B2 :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네요?
A1 : 그렇지.
B1 : 근데 그 평범한 농촌마을이 갑자기 크게 일어난 건 기차때문인가요?
A1 : 기차는 본래 여기가 원래 함열이 되기 이전에 함라가 본래 함열리야. 요즘에 익산 주간지에도 나오지만 함라부자라고 함라파출소 뒤에 보면 정동에 99칸짜리 집이 있었어. 일정 때 100칸 넘는 집은 못 짓게 해가지고 부잔데. 지금 거기에 가면 익산시 둘레길이 함라파출소 뒤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지금도 그 집이 있어. 조씨들 김씨들 함라에서 유명한 사람들인데, 그 때 그 기차가 대전에서 함라쪽으로 선로를 놓으려고 했다고. 그런데 함라의 양반들이 기차는 빽빽 소리난다고 해서 함라로 갈 것을 함열로 돌렸데. 그래서 기찻길이 익산으로 황등으로 나간거야. 어디서 양반들 시꺼먼 연기에 소리 낼라고 하느냐 해가지고 돌렸다 그랬어.
B2 : 그럼 철도가 들어온 이후엔 함라쪽이 아니라 함열쪽이 시장이 크게 된거죠? 그러면 함라부자 조씨라 하셨나요?
A1 : 지금은 아무도 없어. 내가 이름이 잘 생각이 안나는데. 김 누구가 시인인데 월북을 했어.
B2 : 여기도 부자 한 분이 계시다고 하던데.
A1 : 지금 현재 요즘 부자라고 하면은 김철환이라고 석공 석산 사업가. 산에서 돌을 캐는데 그 아들이 전북대 학생회장인가 했을 거야.
B2 : 역이 생기면서 부자가 되신 분도 많이 계신가요?
A1 : 유재철이란 사람도 석산에서 돈 많이 벌어서 집 잘 짓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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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예전에는 다목이란 일본 사람 이야기 좀 부탁드립니다.
A1 :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니까 확실한건 몰라도 들을 때는 ..우리 아버지가 102살, 103살쯤 되셔. 그런데 우리 아버지 연령들이 그 사람 집에 밑에서 지게에 쌀을 짊어지고 저 연강까지 짊어지고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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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함열의 흥망성쇠가 이 철도와 깊은 연관이 있네요.
A1 : 별거없어. 옛날에는 토굴이라고 있었어. 지금 물류가 전부 기차로 다 했잖아. 거기 인부들이 많아 하역 작업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다 없어져버렸어. 기차로 가버리고 전부 화물차들이 역에서 내리면 또 화물차로 실어서 가버리잖아. 그러니 기차를 이용을 안 해. 그리고 사람도 KTX타려면 익산으로 나가야하니깐 여기서 안타고 다 나가버리지. 서울가는데 3시간 탈 수 있는 무궁화호는 촌사람들만 타는 거야. 기차로 인해서 뭐 좋아진 것은 없어.
B2 : 익산시에서 KTX나 새마을을 가져가기 전에 몇 십년동안은 시장으로서의 입지는 있었던 모양이네요.
A1 : 그러지. 익산시 이전에는 괜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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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그리고 혹시 아까 동지산을 태목산이라고 하셨는데요. 왜 태목산이라고 했는지 알고 싶은데요.
A1 : 확실한 내용은 모르는데, 클태자 나무목자 뫼산자 그럴거야. 내가 등산하러 수십년 다녔는데, 거기다가 상수도를 뭘 만든다고 가운데를 팠거든. 근데 완전히 산이 모래더라고. 옛날 이름 짓는 동네마다 그런 내용이 있잖아. 그 산은 반은 국유지고, 반은 개인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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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산에 공사를 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나 보네요?
A1 : 옛날에 태복산이었지, 동지산으로 바뀐지는 오래됐지. 저쪽에 나가면은 흑산, 독산그랬어. 독산, 독산 그랬어. 옛날 그런거보면 장수들이 서로 싸우느라 돌을 던져가지고 독산이 되었다 그래.
B2 : 그 이야기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재밌을 것 같은데요.
A1 : 독산은 옛날 추석날이 되면 이 근처에서 전부 사람들이 그리 가가지고 씨름도 하고, 지금 행사들 하잖아. 옛날엔 다 그리 모였어. 지금 한 50, 60년 전쯤엔. 그런데 지금은 유씨들 산이야. 그 독산에 석산개발을 했고, 다 없어져버렸지.
B1 : 아까 장수들이 투석전을 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 인가요?
A1 : 그게 아까 거기야. 석산이 돌산이라는 데가 거기 가보면 장수바위라고 장수가 태어났다고 하는 바위가 있고, 할머니바위도 있고. 또 이렇게 굴 같이 생긴 바위도 있었고, 그 밑을 걸어서 올라가면 그 안에가 넓어. 그 안에서 추석 이튿날이 되면 이 근방사람들이 다 모여서 아주 큰 행사들을 했어.
B1 : 장수들이 서로 둘이서 돌 던지고 싸웠다던.
A1 : 그 이야기는 이 돌산이 본래는 흙산이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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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함열엔 석산 개발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가요?
A1 : 그러니까 아까 얘기한 그 산들이 저쪽에는 김철환이 흙산캐서 부자됐고, 이쪽 석산 독산은 유재철이가 해가지고. 같은 유씨들이야. 그 산 임대해가지고 부자됐고. 지금 호남석산은 저 낭산서 여산동이라고 하는데 거기 가서 캐가지고 그 사람은 계속 부자되고 있지. 여기서 함열에서 사업해서 부자된 사람은 별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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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아까 독산 이야기에서 할머니바위도 있고 장군바위도 있다고 하셨는데, 거기 전설같은 것 있으면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1 : 그건 뭐 내가 본대로야. 그냥 이렇게 쪽찝게 할머니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고, 넓은 바위는 올라가면 폭 파져있어. 요즘에 저쪽에 발자국이 있는 식으로 파져있어서 거기서 애기를 낳았다고. 그런 바위들이 있었어. 지금은 다 없어졌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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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혹시 일제시대나 한국전쟁때 이야기를 아시나요.
A1 : 철도이야기는 잘 알잖아. 옛날 신익희씨가 대통령나왔을 때 황등 함열사이에서 사망했잖아. 기차에서. 익산엔가 내려와서 대통령 연설하고 올라가다가 여기서 순직했어. 기차안에서 심장마비로. 바로 황등 함열 요 사이여. 6.25때는 내가 종종 살았으니깐 서울에서 구루마 좋은거에 채워가지고 인민군 중공군들 와가지고 아까 말한 부잣집 거기에다가 인민군 치한대라고 있어. 말하자면 지금 일개 노동대 파출소 같은거. 거기서 사람들 움직이도 못하게 하고 맨날 아침에 징치면 나가서 일해야하고. 6.25노래 모여서 ‘장길산 줄기’ 암튼 이런 노래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그랬지. 또 6.25때 여기 사람들 많이 죽었어. 저 천장단들 뭐 한사람들. 산에다가 세워놓고 총 쏴서 죽이고. 많이 죽었지. 동지방죽이라고 거기도 사람들 죽으면 거기다가 늘여뜨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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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함열이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에 전통도 있고 옛이야기도 있고. 철도를 통해 마을의 흥망성쇠가 있었는데 철도나 이 지역이 정말 흥했을 때 추억을 알고 계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A1 : 지금 다 그래. 옛날에는 웅포, 함라, 용안, 성당, 망성, 삼기, 여산 밖에 사는 7개면들이 걸어서 아니면 옛날 자전거로. 동네 자전거 한 두 대 밖에 없을 때. 그런 사람들이 걸어서 멜빵메고 촌에 있는 거 가지고 시장에 와가지고 장사도 잘 되고 괜찮았어. 옛날에는.
B1 : 그럼 옛날에 웅포나 함라에는 이런 장이 없었나요?
A1 : 없었지.
B1 : 그럼 주변에 7개면들의 주민들은 함열로 다 모였던거네요?
A1 : 함열로 다 모였지.
B2 : 지금까지도 2.7장은 계속하고 있습니까?
A1 : 계속하는데 시장을 다시 지었는데 잘 못 지어가지고 상인들이 못 들어와. 저 밑에 새로 난 길가에 상인들이 들어오게 털어서 해야하는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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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소화시대 이야기는 기억하고 계신가요?
A1 : 그 때는 잘 모르지. 소화10년도 태어났을 뿐이야.
B1 : 혹시 어르신의 아버님은 길림으로 왜 올라 가셨을까요?
A1 : 뭐 그때는 일본사람들땜에 못사니까 피난 간거야. 여기서 많이 갔었어 내려와서 다 죽고. 나도 그때 못 내려왔으면 요즘에 한국에 교포출신이라고 나왔을런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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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역전동마을 구술 모습


역전동마을 구술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