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함열읍 > 멀뫼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함열읍 > 멀뫼마을
구술자 전현철(1957)남자
구술자 이영희(1952)남자
구술자 전병수()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8-14
비고 면담장소 : 함열 멀뫼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14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멀뫼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멀메(屹山) : 멀메와 한문자 이름인 흘산과는 상관성이 없다. 그런데 흘산에서 가까운 낭산면 용기리 ‘흙산’도 한자로는 ‘흘산(屹山)’으로 썼으니 ‘흙산→흘산’이 아닌지?

『익산시사』

구술요지

1) 마을 유래담 :
- 지명유래: '멀뫼'라고도 한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은행나무 제빼기: 큰 은행나무가 있는 고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행나무에 제사도 지냈다고 한다.
- 장수바위: 집 터 만큼 큰 바위이다. 바로 옆에 있는 움푹 파인 곳은 장수가 소변을 본 곳이라고 한다.
- 칼바위: 칼처럼 생긴 바위이다.
- 굴바위: 바위가 미로처럼 되어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문턱바위: 올라가는 턱이 높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검응바위: 검은색 바위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조개 같이 생기고 다른 하나는 남자의 고환 같이 생겼다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할미바위: 치성을 드리던 바위이다.
- 장수바위: 독산 개발 때 장수바위를 폭파 하려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 장수바위 주변에 무당들이 살았다고 한다.
- 연애바위: 그 바위 밑에서 연애를 했다고 전해지는 바위이다.
- 마을의 형태: 용의 혈(穴)을 닮았다고 한다. '학선골'의 방죽이 꼬리 날개, 머리 쪽 부분은 일제시대 도로를 내어서 혈을 끊었다고 한다.
- 흙산과 독산 전설: 원래는 독산이 흙산이고 흙산이 독산이었는데, 장수들끼리 서로 돌과 흙을 던지고 해서 지금의 흙산과 독산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 배바우: 배를 묶어 놓았던 바위이다.

4) 민속
- 우물제사: 아들을 못 낳는 부부가 함께 우물에 제사를 지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속이 전해진다.
- 독산: 팔월 열여섯 날이면 함열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잔치를 하였다.

구술채록

A1 전현철 (56) 1957년
A2 이영희 (61) 1952년
A3 전병수 扶



B1 박태건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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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뫼마을 이장님 과 간단한 이야기 이 내용은 이후에 다시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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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예전에 마을에서 부정 타면 우물 다 퍼고 그러지 않습니까?

A2: 그리고 아들 못 낳았을 때 아들 못 나으면 우물 제를 지어가지고 거기에서 아들을 얻는다고 해서 우리 산 증인이 우리 아저씨요 허허허.

B1: 우물 제를 지내요? 어떻게 지내요?

A2: 우물을 청소 싸-악하고 아들 낳으실 분이 우물 속으로 들어가 가꼬 안에 있는 모든 청소를 싹 해야 해요 딸 만 여렷이 낳고 아들 못 낳았을 때 우물 그 안에를 청소를 싹 해가지고 그렇게 하고 나서는 살 몇 개 넣고 뭐 이렇게 조금 씩 넣어 가꼬 어머니 되는 사람이 절을 하고 해요 아버지가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오시고 어머니가 제를 지내고.

B1: 그게 이 앞에 있던(마을 회관) 우물 인가요?

A2: 내 여그 지금 우리 땅이에요 우리 우물인디 우리 아저씨가 거기서 제를 지내고 해서 낳았어요.

B1: 아-- 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A2: 옛날 이야기하는 것은 나도 여기가 고향이 아니지마는 우리 시어머님도 그렇고 나도 여기로 시집을 왔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은 거에요 저기 우물 제를 지내 가지꼬 아들을 낳다 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었는데도 이 동네에서 우물 청소를 하며는 오셔 가꼬 항시 제사를 지내 셨지 지금 그래서 저 우물을 안 묻었어요.

B1: 지금도 가끔 제사를 지내나요?

A2: 아니요 지금은 안 지내죠 어르신들 안 계시니까 지금은 자연적으로 안 지낼 수 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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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구술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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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이 마을 뒤에가 산이 상당히 좋던데요?

A2: 예 명산이 엄청 컸죠 옛날에는 과거에는 진짜 나 시집 온지 43년 됬는데 그때만 해도 여그 길이 없어가지고 걸로 넘어서 산 있는 데를 거기를 걸어 다녔었어요.

B1: 넘어가지고 함열로 갔다고요?

A2: 예.

B1: 그러면 저쪽 마을도 전부 그 길을 이용 했나요?

A2: 이 길로 다 다녔지.

B3: 그 고개를 뭐라고 했나요?

A2: 거기가 그 여기가 ‘은행나무 제빼기’고 여그가 은행나무 아름드리가 있었는디 그것을 베어서 그렇지 그게 엄청 큰 아름드리여서 ‘은행나무 제빼기’고 절로가면 ‘독산’ 넘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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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는 있나요?

A2: 근디 우리 아저씨가 알기로는 저기 ‘독산’ 밑에 ‘할미바위’ 머 ‘장수바위’ 머 그 요런 것은 다 알고 있지 이 양반이 여그서 태어나 가꼬 여그서 여그까지 살았으니까 64년 까지 살았으니까.

B1: ‘할미바위’에서 치성 같은 것도 지냈나요?

A2: 옛날에는 그런 것을 했죠 ‘장수바위’에서도 했고.

A1: ‘장수바위’에서 그거 폭파 할려는 사람 죽었지.

B1: 아 그래요?

A2: 옛날에 ‘전설 고향’도 있었자녀 여그가.

A1: ‘전설에 고향’ 두 번이나 나왔었어.

B1: ‘장수바위가’ 어떻게 생겼었나요?

A1: ‘장수바위’가 이 집 터만 했어요 컸는데 거기에 가면 장수가 오줌 쌌다고해서 움푹 파였었어 올라가기가 우리는 어렸으니까 올라가기가 좀 힘들었어요 ‘칼바위’,‘굴바위’, ‘연애바위’, ‘문턱바위’ 그런 것이 많이 있었어요.

B1: 그렇게 바위가 많은데 왜 ‘장수바위’에서 치성을 지냈을까요?

A1: 모르겠어요 그건, 무당들인 들이 거기에 많이 있었어요 그 산 속에 서당이 하나 있었는데 성씨 할아버지 서당이 있었는데 그 산 유씨들 문종상이 있었거든요 유씨 들이 다 그 양반한테 배웠으니까 그 손자까지도 그 배운 제자들이 할아버지가 선생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선생이었으니까 그 손자한테도 이 말하자면 함부로 못 했어요 이 자기 선산에 살고 있어도 그 양반이 ‘송영희’씨라고 돌아가셨는디.

B1: 무당들이 치성지내고 그러면 그 바위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나요?

A1: 거기는 항상 촛불이 켜있어요 우리 어렸을 때 보면 산 밑에 있는 것도 아니고위에 있는 것 같아요 한 3∼4부 이렇게 산 전체를 보면 한 3∼4부 능선에 있었는데 이것을 거기는 사람들이 안 갔어요 무속인 들만 가고 앞 쪽 북쪽 쪽으로 있었거든요.

B1: ‘할미바위’ 이야기 좀 해주세요.

A1: ‘할미바위’는 난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굴바위’에서 놀았거든요.

B1: ‘굴바위’요?

A1: 바위가 미로처럼 되어있어요 지금 같으면 금강산 그 정도로 가게 아마 우리 어려서 기억인데 ‘칼바위’는 진짜 칼을 삐쪽한 칼을 이렇게 딱 세워 놓은 것처럼 크게 한 15미터 ‘칼바위’가 크게 있었어요 진짜 칼자루처럼 딱 있었죠 인제 올라갈 때는 지금 저 꼭대기에서 부터는 ‘문턱바위’라고 다섯 계단이 있었어요 큰 바위가 이런 집 채만한 바위가 그렇게 있는데 그걸 사이사이로 이렇게 올라갔죠.

B1: 지금 있었으면 진짜 관광 명소가 되었을 것같네요.

A1: 예 관광명소 되었죠 팔월 열여섯 날 되면요 여그 낭산 함열 황등 성당 용왕 다 이쪽으로 ‘독산’으로 다 모였어요 팔월 열여섯 날이면 여기가 인산인해를 이루었었어요.

B1: 모여서 무엇을 하였나요?

A1: 뭐 여 ‘콩클’대회도 하고 그랬죠.

B1: 뭐 달집도 태우고 그랬나요?

A1: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뭐 씨름 대회 같은 것도 하고 여기서.

B1: 터가 넓었썼나봐요.

A1: 예 거기는 약간 평평했었죠 아부지 살았었을 때 거기서 옛날 콩클 대회, 씨름 대회가 한데가 거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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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명당도 있었나요?

A1: 참 모르죠 우리는 명당 그런 걸.

B1: 외지 사람들 와서 묘도 쓰려고 그런 건 없었어요?

A1: 옛날에는 묘 쓸라고 명당을 저그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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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 이 산이 어떤 형태라고 들으신 적 있으세요?

A1: 용 형태라고 했어요 옛날에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지금 저쪽으로 용머리가 있고 꼬리가 이렇게 돌아서 머리가 미륵산 쪽을 보고 있고 입을 벌리고 있고 이렇게 해가지고 저쪽 산하고 이 짝 산으로 날개가 있고 꼬리가 그 쪽으로 이렇게 돌아서 ‘학선골’ 그로 해서 방죽에 꼬리를 있고 그래서 왜놈들이 양쪽 날개를 지금 여기 도로 났자나요? 저쪽 도로가 났자나요? 양 쪽 날개를 끊고 저기 사거리 있는데 거기를 거그가 머리를 머리를 끊었다는 거여.

B1: 반대가 심했었겠네요?

A1: 왜놈들이 끊었으니까 뭐.

B3: 어르신 좀 그려 주실 수 있나요?

A1: 도로가 이렇게 나있을 것이여 학선으로 도로가 나있어 우리 마을이 여기 있으면 저기가 함열 쪽이고 이쪽이 함열쪽 인데.....(그림을 그린다.) 저쪽 북쪽 쪽으로는 사람이 옛날에는 못 올라갈 정도로 가팔랐어요 우리 어려서는 함부로 못 올라갔어요 우리는 거기를 올라가면 미끄럼타고 북쪽이니까 항상 낙옆이 있었다고 미끄럼 타고 놀고 그랬죠 굉장히 가파랐어요 용이 이렇게 배부르자나요 그런식으로 막 가파랐다고 그래 가꼬 산 정상에는 이 방만한 못이 하나 있었어요 여름에 이렇게 장마 비가 많이 오면 인자 우리 어려서는 여름에 여그다 담요 하나씩만 밥 먹으면 올라가자나요 어른 따라서 우리 어렸을 때는 못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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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그 못을 뭐라고 불렀나요?

A1: 몰르지 그건 인자.

B1: ‘멀메’마을은 왜 ‘멀메’라고 지었나요?

A1: 그거 나 한번을 읽어 본 기억 있는데 원래 ‘멀뫼’여 언제 무엇을 해가꼬.. 읍사무소 한번 따와 가지고 읽어 본 적 기억이 있는데

A2: 물어보면 ‘멀메’라고 하면 “‘멀메’가 뭐써요?” 하면 머리 클 때 멀자에 산 뫼자 써요 그렇게 해요 왜냐면 그 내력을 모르니까 그것은 어른들한테 들은 적도 없고 뭐 거기에 대해서 막 신경을 쓰고 그런 것도 아니고 하기 때문에 모르니까 그렇게 말을 해버렸지.

A1: 이 앞산이 이 저 앞산 다 없어 진 산이 ‘용성산’ 이거든 우리 어렸을 때는.

B1: 그런데 산이 없어졌나요?

A1: 예 없어 졌어요 다 석상 개발해서 없어졌었어 저 앞산은 ‘흙산’ 이었고 ‘흙산’ ‘독산’ ‘용성산’ 그래서 6.25 때도 이 산 동네에서는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데요 잡혀간 사람은 있었어도 그 산 세 개 삼각형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없데요 잡혀간 사람들은 있었어도 6.25 때도.

B1: 옛날부터 있었던 마을인가요?

A1: 그렇죠 뭐 골(洞)자 들어간 동네는 오래된 동네자나요 요 앞에는 ‘덕룡골’이라고 인자 골자 들어 간디 인게 거기는 지금 ‘새’터 ‘오막새’ 터 그러자나요 ‘새’터 라는 이야기는 나도 들어보면 뭐 우리나라에서 최고 많다고 하더만 ‘새’터, ‘오막새’터 그러자나 그 아래는 씨족사회라 못 들어오니까 씨족사회라 그 골자들은 못 들어간다고 그러자나요 씨족사회인게 못 들어오니까 타승받이는 그 뭐 ‘새’터에서 사니까 ‘새’터 뭐 ‘오막새’터 그런 식으로 있어요 동네 이름이 그거는 부르는 이름이 옛날 어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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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는 여기가 어떤 성씨가 많이 살았나요?

A3: 근게 여기로 보며는 이 산은 산이라고 그래도 이 근처 집단이 형성해서 사는 것을 씨족으로 보며는 구씨들 류씨들 전씨들 아까도 이야기한 박씨들 이런 분들이 많이 사시고 그리고 저쪽 함열쪽으로 나가면 인자 구씨들이 많이 사시고 이쪽으로는 류씨 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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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르신 여기‘독산’하고 ‘흙산’에 대한 이야기 들으신 이야기 있나요?

A1: 옛날 우리 어려서 라디오 방송에서 ‘전설에 고향’ 그런거 나오자나요 그런거 두 번이나 나왔어요 여기.

B1: 어르신 ‘전설에 고향’이야기 말고 어르신 들었었던 이야기 좀 해주세요.

A1: 내가 뭐 ‘전설에 고향’에서 그런 내용이죠 뭐.

A2: 옛날에 우리 아버님이 있었으며는 그런 이야기 잘 하는디 그런데 다 돌아가셨어 옛날 노인 양반들 다 돌아가셨어 우리 아버님 아닌게 아니라 저 쑥뜸 짊어지고 댕기면서 그런 이야기 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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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혹시 어릴 때 도깨불 같은 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세요?

A1: 그런 것은 없고요.

B1: 그럼 귀신 이야기나 여우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A1: 예 우리 어려서는 ‘장수바위’ 가서 오줌 똥 싸지 말라고 그런 것은 있었지요 그 무속인들이 항상 제사 지내고 그래서.

B3: 어르신 아까 ‘장수바위’ 폭파 했던 사람 3명이 죽었다는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A1: 그 석산을 개발하면서 거기를 부셔야 들어갈 정도의 길을 낸디야 그래서 다이나마이트로 터트려가지고 그때 사람이 죽었다고 하드라고 그러드라고.

B1: 그때가 언제가 인가요?

A1: 한 지금 30년도 넘었죠 근디 그 개발한 사장도 옛날에는 막 잘 나갔는데 지금은 그지 됬어요.

B3: ‘장수바위’ 폭파한다고 반대 많이 하셨겠네요.

A1: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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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옛날에는 산 짐승도 많이 내려오고 그랬나요?

A1: 그런 것은 없었어 산이 깊 덜 않으니까 오히려 지금이 많이 내려오지 지금이야 노루 내려오고 꿩 내려오고 그러지 멧돼지는 아직 출현 안 했지만.

B3: 마을에서 축제가 있으면 산에 올라가서 했나요?

A1: 그러니까 팔월 열여섯 날이면 이 근동 근동면 한 5개면에서 사람들 다 불러 모았어 산에 막 빡빡 했죠 정상에 막 그때는 들판이 이렇게 이어가고 그럴 때라서.

B3: 어르신 그러면 아까 방죽 이야기 좀 해주세요 방죽이 깊었나요?

A1: 아니요 안 깊었어요.

B3: 방죽이 다른 이름이 없고요?

A1: 예 그런 것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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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마을 주변에 또 특이한 지명 있나요?

A1: 요 앞에는 ‘왕제’.

B3: ‘왕제’는 왜 ‘왕제’인가요?

A1: 몰라 인제 어려서부터 ‘왕제’라고 그래서 그 여그가 쪼금 언덕이 있는데 15미터나 되나 인자 거기를 ‘왕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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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산에 대한 돌이야기도 조금 더 해주세요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A1: 그런 것은 모르고 ‘연애바위’는 이렇게 보면 돌이 하나는 이렇게 반듯이있고 하나는 이렇게 있는데 이 깊이가 지금으로 보면 10미터? 이상 이렇게 되었었어요 컴컴하게 바닥은 평평하고 연애하기 좋게.

B3: 거기 옛날에 젊은 남녀들 많이 갔겠네요?

A1: 그렇죠 근게 옛날에는 여관 같은게 없은게 처녀 총각들 거기서 놀면 우리가 가서 고무총으로 막 쏘고 그랬지 우리 초등학교 였을 때니까 그러고 막 도망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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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주변이 산이 여서 초등학교 다닐 때 힘들었을 것 같은데.

A1: 그렇죠 한 시간 동안 걸어갔죠.

B3: 그럼 어디로 걸어 가셨나요?

A1: 여기는 함열 초등학교 고개 넘어서.

B3: 그 고개 이름을 뭐라고 했나요?

A1: 그쪽으로는 고개가 없고 이쪽으로 고개 있어요 이 ‘덕룡골’ 쪽으로.

B3: 아까 어머님이 ‘은행나무 제빼기’라고...

A1: 여기여기 여쪽을 ‘독산’ 올라가는 쪽으로 이쪽으로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못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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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산이 험해서 귀신 이야기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A1: 아 그런 것은 없어 우리 초등학교 때 중학교를 시험보고 간 세대 자나 밤 12시 초등학교 과외하고 밤 12시에 여까지 걸어왔지 혼자.

B3: 무서웠겠는데요?

A1: 뭐가 무서워 산속으로 갔지 우리 할아버지 생에 태운 자리를 피해서 우리 할아버지는 큰 도로 옆에서 생애를 태웠는데 생애 태운자리가 무서워 긍게 생애 안 태운데가 할아버지 산소 앞으로 걸어갔지 산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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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혹시 함라에 ‘구렁목’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A1: ‘구렁목’들어 봤는데.

B2: 왜 ‘구렁목’이라고 했는지 아세요?

A1: 그건 모르지 함라가 여기서 어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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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독산’하고 ‘흙산’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A1: 옛날에 장수들끼리 흙산 장군하고 독산 장군하고 싸움 했다는 그런 이야기 ‘전설에 고향’ 그런데서 들었지 내가 뭐 여기에 또 ‘검응바위’라고 있었어 또 ‘검응바위’ 암놈 수놈이 있었어 그것도 지금 없어 졌지만.

B2: 왜 암놈과 수놈이 있었나요?

A1: 하나는 조개 같이 생겼고 하나는 부랄 두 개처럼 딱 있단 말이야 그래가지고 암놈 수놈이 있었어.

B3: 그 돌이 검정색이었나요?

A1: 어.

B3: 그거 지금 있나요?

A1: 없어졌어 근디 거그가 암놈 수놈이 딱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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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혹시 이 ‘독산’에서 돌 캐갔다가 험한 일 당했다는 사람 들어 보셨나요?

A1: 이 ‘장수바위’ 폭파한 사람 세 사람 죽었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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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멀메’마을의 자랑거리가 무엇인가요.

A1: 우리 마을은 잔치가 잘 되요 조그만 해도 식구 몇 안되도.

B1: 옛날에도 그렇게 호수가 많지 않았나요?

A1: 예 동네 터가 좁자나요 옛날에는 뭐 동네에서 상을 당하면 서로 협조해서 잘하지 오늘도 점심 때도 동네 분들 다 모여서 가서 짜장면 먹고 우리는 단체가 잘되 또 저녁에도 이장님 댁 보리밥 한다고 밥하지 말라고 단체가 잘되요 .

B1: 기차역이 근처에 있어서 외지로 나가거나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까?

A1: 네 없었어요 그런것.

B3: 기찻길 놓고 변하거나 그런 것있나요?

A1: 몰라요 우리는 그런 옛날 그 지리 풍술이나 그런 걸 믿지도 않고 근데 기가 떨어지네 어찌네 막히내 어찌네 뭐 그런 아니 지금 저쪽 밭 임자가 자기네 땅이 저쪽의 우리 동네 좌측이 자나요? 그 거기를 흙은 파버렸단 말이에요 높으니까 혈이 인자 떨어진다고 그런 이야기를 어른들이 하고 그러시는데 뭐 신경 안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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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고구마는 많이 안 키우셨어요?

A1: 고구마요? 별거 다 심죠 밭에다 논 농사 보리 농사 고구마 콩 그런 거 했죠.

B1: 옛날부터 이 근처 고구마 많이 심으셨어요?

A1: 우리 초등학교 때는 이 도로가에 고구마를 발로 차고 다녔었어요.

B1: 그러면 고구마를 활용한 요리도 많이 드셨어요?

A1: 고구마 쩌 가지고 뭐 지금처럼 호박고구마 자색고구마 그런 게 있는 게 아니고 물 감자 물 고구마 쪄서 말려서 인자 봄 같은 데 겨울 같은 데 먹고 그러면 좋죠 색다른 맛이 있죠 초코렛처럼 어렸을 때.

B1: 그것 말고 다른 지역에서는 못 먹는 음식 같은 거 여기 특산물로 해먹고 그런 것 있으셨어요?

A1: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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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어르신 그러면 옛날에 그릇은 어디서 사서 사용하셨나요?

A1: 모르지 나는 아까 이장님 고모부가 돌아가셨는데 청학동 촌장님 하셨던 분이에요 그런 게 이장님 고모가 이 동네 사람이고 지금도 청학동 사람들 그 분들 여그 와따 가따하고 그러지.

B1: 그럼 이장님이 여기 분이 아니신가요?

A1: 여기서 태어나진 않았지 아버지가 태어났지 아버지가 나가서 살다가 다시 들어오셨지.

B1: 그러면 고모부도 이 지역 분이셨나요?

A1: 내가 알기로는 춘포인가 어디인가 그러던디 하여튼 전라북도 분이에요, 우리 어렸 때는 이게 정월 대보름 때 쯤이면 패싸움을 했자나요 동네끼리 막 우리 같은데는 “덕룡 것들 덤벼라” 저기는 진등이거든요? “진등 것들 덤벼라”하고 이 ‘왕제’에서 싸움을 했어요 돌멩이 던지고 막 활 만들어 쏘고 막 몰려가고 그랬지 근디 양쪽 동네가 울 동네를 공격 한거야 이 작은 동네를 굉장히 큰 동네인데 근데 우리 동네가 안 지죠 그때는 성인들은 없고 중학교 밑으로만 하자나요 그때는 학교 갈 때에도 딱 동네 싹 모여서 걸어가고 그랬거든요.

B3: 다른 동네 사람들도 그랬나요?

A1: 다른 동네사람들도 그리 가야지 혼자가면 맞으니까.

B1: 추석 때 많이 하셨나요?

A1: 명절 때부터 대보름 때까지 그렇게 했죠 ‘왕제’에 가면 새금파리 같은 게 아주 많아요.

B3: 다른 마을 이야기 들으신 것 있으세요?

A1: 아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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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진등’은 왜 ‘진등’이라고 했을까요?

A1: 말 그대로 지-인 등 등이 질으니까 동네가 양쪽으로 있는데 이게 이렇게 능선 따라 양쪽에 있어 등이 지르자나.

B1: ‘흙산’과 ‘독산’ 이야기를 ‘전설에 고향’에서 어떻게 들으셨나요?

A1: 거 흙산 장수하고 독산 장수하고 돌을 던져서 원래는 거그가 ‘독산’이 아니라 ‘흙산’이었는데 서로 장수들끼리 돌과 흙을 던지고 해서 뭐 그랬다고 그랬어요 ‘흙산’이 ‘독산’되고 ‘독산’이 ‘흙산’되고.

B3: 아까 마을끼리 패싸움 했다는게 어르신 어릴 때 말고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것이었나요?

A1: 그렇치 우리 전부터 했지요 우리 선배들 막 실제로 눈에 화살을 맞은 사람도 있어 대나무 깎아서 실제로 맞은 사람도 있어.

B3: 그럼 언제부터 했는지 아세요?

A1: 모르죠 언제부터 했는지.

B1: 전쟁이었네요 전쟁.

A1: 전쟁이지 전쟁 마을 전쟁.

B1: 마을 어른들은 명절날 뭐하셨나요? 다른 마을 사람들하고 씨름도 하시고 그랬나요?

A1: 그런 것은 없었어요 우리 동네는 그냥 놀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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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옛날에 아프거나 그러면 어떻게 하셨나요?

A1: 저 어렸을 떄는 우리는 교회 다녔으니까 더군다나 그런 건 모르고 어렸을 때부터.

B1: 다른 사람들은요?

A1: 경 읽고 그랬죠 저 솔찬히 컸을 때까지 그랬죠.

B1: 동네에 당골내가 살고 그랬어요?

A1: 아니요 없었어요.

B1: 그러면 당골내는 어디서?

A1: 모르죠 그건 그것이 뭐 인자 장독에다 시루에다 놓자나요 그것을 가따 먹고 그랬지 예부터 가따 먹으라고 해놓은 것이라고 해가지고 그래서 “시루나 가따 놓아라” 막 아침에 소리 지르고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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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어머님 아까 ‘은행나무 제빼기’ 이야기 해주세요.

A2: 은행나무 있었어 큰 것 있었어.

B3: 얼마나 컸나요?

A2: 어마어마하게 컸었어.

B3: 그 골짜기에 은행나무 하나만 있었나요?

A2: 아름드리 하나 있다가 그것을 옛날에 누가 팔아먹어버렸나 우리 아버님이 이야기 했는데 누가 그 나무를 팔라고 팔았는데 그걸 자를 려고 했다가 사람들 다쳤디야 그래가지고 그 나무를 못 잘랐어 근데 언제 어느 때인가 나무가 없어졌드라고 그때 그러고 나서는 그 나무 없어진 뒤로 그 길이 없어졌어 사람이 안다니까 그래서 그 길이 없어졌드라고 옛날에는 나 시집와서 저 함열서 이리 올려면 걸어다녔어.

A1: 사람들 많이 다녔지 글로.

B3: 어르신 은행나무가 그렇게 크면 마을에서 제사도 지내고 그랬나요?

A2: 옛날에는 제사도 지냈데요 우리 아버님이 이렇게 제빼기에서 제도 지내고 우리 아버님은 옛날 지금 절에 다니고 하는 양반들이라 우물제도 지내고 ‘은행나무 제빼기’ 가서 제도 지내고 그랬었다고 하드라고 옛날에 아무 일도 없으라고 우리 아버님은 저 넘어 동네 가서도 좀 살았어요 남산면 쪽으로 가서도 살았는데도 여기 우물을 푼다 청소한다 하면 우리 아버님이 와서 우물 청소하고 또 아들을 낳기 때문에 또 당신 당신 땅이고 그리고 우물 다 퍼내고 청소 싸-악하고 나서는 우리 아버님은 인자 떡시루 요만한 시루 해가지고 놓고 우물제 지내고 거기다가 밥해서 용왕제 지내는 것을 우리 어머니가 용왕제를 지냈어요 아들을 위해서 그러고 정월 보름날 열 나흔날 되며는 이렇게 길 다니면서 이렇게 ‘은행나무 제빼기’에 또 밥을 가따 놓고 제 지내고 또 ‘왕제’ 넘어오는 데도 제를 지내고 우물에서도 제를 지내는 것을 내가 많이 봤죠 왜냐하면 시집와서 하니까 지금에 와서는 나는 그런 것을 안 하지마는 옛날에 어머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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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러면 그런 신령스러운 곳 말고 반대로 무섭고 안 좋은 곳이 있었나요?

A2: 그때가 저기 ‘왕제’에서 내가 한 번은 이렇게 ‘덕룡골’에서 넘어오면 ‘왕제’가 있어 저쪽에 길에 이 나무 우거져 있는데 한 번 건너오는데 이 머리 끝이 쫘-악 서드라고 그 뒤로는 안다녀.

B1: 왜요? 거기 사람들이 많이 죽었데요?

A2: 아니 죽고 그런 것은 없는데 그러드라고 거기에서 그 뒤로는 내가 ‘왕제’를 잘 안다니고 그랬지 거기 넘어올라면 이상하게 안 좋아 뒤끝이.

B1: 다른 사람들도 그랬나요?

A2: 그런 사람이 몇 있드라고 나만 그런 줄 알았어.

A1: 제가요 저기 앞에 용성중학교를 나왔거든요 근디 인자 글로 와요 큰 길로 거기 오는 길이 무서워서 저 산쪽으로 우리 할아버지 산소가 산쪽에 있는데 산속으로 걸어왔어요.

B1: 산속이 더 무서웠을 텐데요.

A1: 안 무서워요 더.

A2: 아니여 길 이렇게 있는 데에서 건너오다 보면 ‘덕룡굴’에서 저 ‘왕제’로 이렇게 넘어 오며는 뒤 머리가 막 서고.

B1: ‘득룡굴’?

A2: ‘덕룡골’! ‘덕룡굴’이라고도 해요.

A1: 거그가 그 동네 산이 ‘용성산’이에요.

A2: 거기 산이 번번하게 참 나락도 들고 참 좋았었어요 그 능선이 거기도 참 산은 참 좋았어 사람들이 다 독 캐먹어서 그렇지 그 엄청 좋은 막 나 시집와서 얼마 안되서 사람들이 거기 올라가가꼬 다들 누었고 이불가꼬 가서 거그가 누었어.

B1: 어느 때요?

A1: 여름! 시원하고 찜질 같은 것도 하고 그럴라고 거기 많이 올라 갔었어 그러고 고추 같은 것 널 것 있으면 거기 널고 우리 나 시집와서도 거기 그렇게 많이 하더라고 근데 이제 석산 개발해버리고 어쩌고 해버리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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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저희가 함열에 ‘멀뫼’마을 이라고 있어요 거기도 그 ‘사자암’ 있는데 인데 그 바위를 석상개발 한다고 다 깨버려서 좋은 바위가 다 없어졌더라고요.

A1: 거기를 독쟁이라고 했어 우리 어려서 “독쟁이로 학독 사러 간다”고 그랬어 곰개로 소금 받으러 간다고 쉬는날 곰개로 소금 받으로 간다고 안혀?

B1: 소금 받으러 가라고요?

A1: 옛날에 어려서 그랬자나요 속담에 어른들 말씀이 “노는이 곰개장 가서 소금받아오고 독쟁이가서 학 독 사와라”

B1: 그 바위가 다 깨져서 없어졌데요.

A1: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는 여기서 보면 허연하게 보였어 저기 산 여그 옛날에도 보였어.

A3: 함열 저 ‘사자암’을 보면 거그가 허연하게 보이죠.

A2: 옛날에는 여 독산에서 하면 이 함열이 다 보였다고 하자나요.

B1: 여기도 그러면 군사적 요충지였네요.

A2: 여그 꼭대기 ‘장수바위’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처다보면 다 보였디야, 지금 있었으면 관광지 되었을 판인데 없어져서 지금.

B1: 언제부터 사람들이 ‘독산’에 모이는 행사를 하지 않았나요?

A1: 석상 개발하면서 안 모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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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일에 대한 대화)

A2: 시아버님하고 시어머님이 있었으니까 내가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고 아버님이 수시로 이야기를 해주시고 인자 돌아가졌지 돌아가신지 30 몇 년 되었지 32년? 되었는디 그전에도 와따 가따 하시면서 여기 밭은 어떻고 뭐가 있었고 우리 밭에 고려자기가 있었디야 지금도 가끔 기왓장이 나와 내가 봤어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 고려장터라고.

B1: 그래서 박물관 같은 곳에서 조사오고 했나요?

A2: 아니 그런 것은 안 했어요 신고했다가 어뜩하라고 밭도 못 짓고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런 것도 있어요 나도 경주에서 살았지마는 경주 문화재 그거 하며는 아파트 짓다가 걸렸다가 하면 그건 몇 년을 공사 못하는 걸 알자나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었나 몰라도 거기 한 번씩 이렇게 밭을 하며는 기왓장 같은 것 사기 접시 이런 뭐 접시 조각 같은 것도 나오더라고.

B1: 예전에 이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었나봐요.

A2: 고 그거 집터 였으니까 그런 게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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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외지 음식과 여기 음식에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A2: 음식이 아무래도 내가 고향이 경상도지마는 경상도 음식은 실지 지금은 먹을 수 없지만 여 전라도 음식은 맛 칼스럽고 담백한 맛이 나는 것이 우선권이더라고요 옛날에 내가 시집 와서 보니까 어머니가 학독에 다가 더억덕억 갈아가지고 고춧가루라고 할까 김치를 버무려도 양념이 그렇게 없어도 그 김치가 맛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왜 그랬냐며는 경상도하고 전라도하고 이렇게 만났으니까 음식이 아무래도 저그 하지요 그 어디가 어떻다는 것은 음식들 제대로 알 수 가 있지마는 여기 음식이 저기 담백하면서도 저그 하더라고.

B1: 시큼한 편입니까? 좀 짭짤한 편입니까?

A2: 짭짤한 편.

B1: 경상도에서 안 해먹는 음식 중에서 여기서 해먹는 것이 뭐가 있던가요?

A2: 고구마 순 김치도 경상도에서 안 해먹고 여기에서는 그것도 여름에 해먹고 경상도에서는 열무김치도 물김치만 담을 줄 알지 여기는 짠지 같은 것 담고 그런 것도 많아 안 해먹는 음식이 경상도에서 안 해먹는 음식이 여그가 많더라고 김치도 여러 종류 경상도는 김치가 어떻게 하며는 그냥 고춧가루하고 마늘하고 생강 넣고 젓갈 넣어가꼬 그냥 이렇게 발르는데 여기는 찹쌀 풀 끓이고 거기다가 양파 썰어 넣고 양념을 해가지고 김치를 담고 그것이 또 틀리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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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함열에서 가장 부자 마을이 어디였나요?

A2: 그것은 모르겠어요.

B1: 그럼 마을이 큰 곳은요?

A1: ‘두라’ 쪽이 아닌가 ‘두라’나 ‘용왕’

A2: ‘학선골’ 아니여?

A1: ‘학선’은 빈부차이가 너무 심하자녀 부자는 큰 부자고 그려 한 동네에서도 그려.

B3: 옛날에요?

A1: 지금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B1: 두라는 마을이 컸나요?

A1: 예.

A2: ‘방교’ 저쪽으로 ‘두라’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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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그 옛날에는 저 앞에 들에 다리가 ‘칠교’라고 했었거든요 지금은 ‘중리교’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 되었는데 아버지 어렸을 때 거 돌다리가 70칸 있었데요 거그가 배가 들어와서 지금도 동네 이름을 ‘배바우’라고 해요 그냥 ‘배바우’ 근데 지금 그 그 다리를 ‘중리교’를 지금 놓을 때 거기를 파니까 진짜로 그 돌이 나온거에요 지금도 있어요 캐면 그 밑에 돌이.

B1: 70칸짜리?

A1: 예 그 밑에 돌이 다듬어져가지고 징검다리 놓은 다리가 막 지금도 땅속에 있어요 그 조금 밑에다가 ‘중리교’를 놨다고 하더라고 그건 남산면 이야기죠

A2: 거기는 남산면이고 여기는 함열면이고.

A1: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는 그 그 하천부지가 있었자나요 우리 할아버지가 하천부지 그 인자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 말 빨만 있었겠죠 하천부지가 우리 할아버지가 관리를 했단 말이에요 거기가 막 모래성도 있고 그 큰 아버지가 나중에 관리를 어렸을 때 우리 큰 아버지가 관리를 하셨거든요 근데 그 ‘칠교’가 ‘중리교’ 놓기 전만 해도 다리 이름이 ‘칠교’였어요 이번에 새로 놓고는 ‘중리교’로 바뀌었더라고 그니까 70칸 짜리 그 ‘배바우’에서 ‘신저리’고개까지 70칸짜리 다리가 있었어.

B1: ‘배바위’는 배를 묶어놓아서?

A1: 예 배를 묶어 놓는 바위가 있었어요 얼마 안 되요 지금.

B1: 어렸을 때 직접 보셨어요?

A1: 아니 그 한 3년 전에 없어졌어요 도로 내면서 거기가 두 개 바위가 있었는데 3∼4년 밖에 안 됬어요 바위가 이 방만한 바위가 있었어요 이 방만한 바위가 두 개가 배를 묶었더니 파자나요 그 파여진 자리도 있고 그랬었어요 한 3∼4년 한 4∼5년 밖에 안 됬지? 한 5∼6년 되었을 랑가? 그 도로 만든지?

A2: 예 한 5∼6년 되었지.

A1: 한 5∼6년 밖에 안 되었어요 그 돌을 없어 진지가.

B1: 바위를 다른 곳에 옮겨 놓은 게 아니라 바위 자체를...

A1: 없애 버렸어요 동네 이름 지금도 ‘배바우’라고 그래요.

B1: ‘배바우’라고 하는데 행정명칭은 뭐라고 하나요?

A1: ‘중리’에요.

A2: 남산면 중리지.

A1: 거기다 배를 댔다고 거 배가 거까지 들어왔다고 그러드라고 우리 아버지 어려서.

B1: 그니까 금강 배가 들어온 건가요?

A1: 예 거그가 금강 물이 인자 물이 많이 들어올 때는 거기까지 물이 차니까.

B1: 중요한 이야기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술사진

멀뫼마을


멀뫼마을 전병수 이형희


멀뫼마을 전현철 지도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