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내용
함열 각지에서 모인 분들을 대상으로 녹취를 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문헌 자료는 없음.
구술요지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비암산 : 산 모양이 뱀을 닮아 비암산이라고 불렀다.
- 군퉁메 : 명당이라고 한다. 커다란 정승의 묘가 두 개 있었다. 지금은 전부 논이 됨.
- 남당산 : 대한민국 8대 명당이라고 한다. 거북이가 구슬을 물러 들어가는 형상이다.
2) 전설 및 민담 :
- 왜정시대 고달픈 삶 : 보리밥도 먹지 못해 독사기풀을 먹었다. 독사기풀을 먹다가 머리가 아파 쓰러진 사람도 있었다. 또 왜정시대 자작논과 귀속논이 있었는데 자작논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거의 대부분이 일본사람들의 귀속논을 지었다.
- 여우이야기 : 술에 취한 사람이 눈앞에 하얗게 어른거리는 것을 따라가다 봉변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 남당산 명당자리 : 청송에 살던 심씨 성의 부자가 죽기 전 아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지관이 올 테니 그 사람을 따라가서 시신을 안치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부자가 죽자 지관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 지관을 따라 20일이 걸려 남당산 하조마을까지 내려왔더니, 이미 그 자리엔 신씨들 사당이 있었다. 사정 끝에 신씨들이 양보하여 심씨가 시신을 안치했는데, 그 후 심씨 집안에 정승과 장군이 여럿 나왔다고 한다.
- 묘에 해코지를 했다가 급살 맞은 이야기 : 어린애가 청송 심씨 묘에 해코지를 했는데 바로 다음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3) 민속 :
- 돌산 씨름대회 : 면 사람들이 돌산에 모여 씨름대회를 했다.
구술채록
A1 김덕환. 1931년.
A2 구예서. 1937년.
A3 최성식. 1936년.
B1 이동혁.
B2 박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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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왜정 때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A1 : 우리 어려서만 해도 쉽게 말허자면 보리밥도 못 먹고 논이 가서 모도 못 심고, 물질이 안 닿아갔고. 독사기풀 이런 거 나잖여. 그것을 얼리미 소쿠리로 이렇게 훌쳐가지고 쪼끔썩 건지면 그거 삭가루라고 있지, 그것을 이렇게 타서 볶아서 먹고 머리가 아퍼서 떨어진 사람도 있고 그랬어, 나도 그런 걸 봤어. 골 아퍼갔고. 빈속에 그런 거 많이 먹어서. 그렇게 못 먹고 살었어요. 솔 껍데기 이렇게 벗겨서나 속이 그 들큰헌 것 나오지, 쫀득쫀득허니. 그것을 벗겨서 씹어서 먹고 그랬어. 얼마나 배고프면 그렀겄어.
B1 : 왜정 때 쌀 공출도 많이 해가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A1 : 그때는 그 귀속논이라고 일본사람 논이여 전부 땅이. 그리고 인자 있는 사람들은 자작논이라고 자기 논 짓는 사람들은 부자여. 극히 드물지. 열이면 하나도 드물어. 일본놈 그거 지면 그냥 다 뺏어가. 다 뒤져갔고.
A2 : 아, 우리는 농사 지어가지고 그놈을 저녁에 짊어지고 가가지고 그 듬벙에다가 그냥 부어버렸대.
A1 : 담궈놔갔고 나중에 일본놈 가믄 빼먹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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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징병 당해서 끌려가기도 했습니까?
A1 : 그럼. 의용군도 갔다 오고 그놈도 갔다 도망 오고 그랬어. 두 번다 도망 와서 살었어. 근디 나랑 같이 간 사람들은 동네서 나까지 여섯 갔는디 다섯 다 죽어갔고 재로 나왔어. 우리 처남도 재로 나오고, 죽어서. 6.25 때. 내가 그 동네에서 그 나쁜놈 빨갱이가 안 가먼 저기 헌다고 혀갔고 의용군을 가라고 혀서나 저그 저 여산 행교를 갔어. 거기서 자게 되얐어. 그런디 그 빨치산 여자가 완장을 차고 그 속에서 좀 나쁘게 봤는게벼, 그 여자가. 그놈을 오라고 허더니 그 산에 가서나 쏴서 죽이드라고 따발총이로. 교육도 안 받고 인자 나처럼 같이 간 사람이. 그른게 인자 그 사람이 술 먹고 저녁에 어떻게 난폭허게 행패를 했는게벼. 그른게 그 여자 인민군이 동무 오라고 허더니 쏴죽이는 걸 봤당게요. 그것 보고 도망 왔어요. 그래서 이렇게 살은 거여. 그렇지 않으면 나도 죽었지.
B1 : 지주들도 많이 죽었습니까?
A1 : 그때 부자들은 다 털렸지. 죽기도 허고 재산 있는 거 다 그냥 뺏어가고 그랬어. 얼마나 당했다고. 나는 우리 집 앞에가 공동묘지가 있어. 공동묘지가 있는디 밤이 막 사람 살리라고 그서 내가 이렇게 팬티 바람으로 뛰어가 봤어. 어려서 철모르고 갔더니 경찰 하나가 충청도서 왔는디 도망 온 거여. 근디 친척도 없어. 근디 옆이 부락으로 도망을 왔는디 경찰 모자가 있잖여. 모자를 썼싸서 여그가 하얀허니 표나. 그 경찰이라고 해갔고. 그 사람을 거그서 죽이는 것 봤어. 여그다 총을 넣으니까 막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는디 죽였어. 죽여갔고 거그서 묻었어, 그냥. 거그 파고 그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도 죽이고 그랬어. 우리 집 옆에가 파출소거든. 근디 뭐 몇 사람 죽였어, 동네사람을. 6.25 지내갔고 대한민국 복구 돼갔고 또 죽이고. 느가 우리 아버지 죽였응게 너도 죽어야 된다고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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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흙산 돌산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A1 : 긍게 산이 그거 흙이 많이 있다고 혀서나 흙산이라고 헌 것 같어, 내가 볼 땐. 돌산은 돌이 엄청나지. 부자가 엄청 났지. 백 억 부자가 몇 있어, 시방도. 거그서 돈 벌어갔고 이렇게 여그서 부자지.
B1 : 흙산하고 돌산에 얽힌 전설은 모르십니까?
A1 : 그건 잘 모르는디 독산에서 씨름허는 것은 봤어, 그 말랭이서. 근디 그것 돌 파가지고 지금은 다 평지가 돼버리고.
A2 : 팔월 여댓썩 날이먼 거기에 이 근동 몇 개 면에서 다 모이는 거여.
A1 : 씨름허는 것 밤이 가,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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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 근처에 특이한 지명은 없습니까?
A1 : 어디서 듣기로는 이렇게 쭉허니 있는 거 비암산이라고 그러더라고. 기다란 해갔고 비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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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명당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A1 : 명당자리는 거기가 지금은 개발이 돼갔고 논이 되았는디 그전이, 일정 말기에, 어려서 들으먼은, 나도 봤거든. 옛날에 정승 알지, 정승. 노정승이라고 그 묘가 막, 큰 묘가 두 분이 있었어. 논이 되았어, 인자. 흙을 다 파갔어.
B1 : 거기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옛날에 그게 군퉁메 산이라고 그랬어. 그리갔고 인자 거그가 노정승 묘가 있었어. 옛날 노정승. 근디 지금은 거가 그 딱 6000평이라는디 논이 되았어. 그 흙은 그릇 맨들고 기와 맨드는 사람들이 다 파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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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도깨비나 여우한테 홀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A1 : 그것 들었어, 나. 술 먹고 어떤 분이 술을 먹고 저녁에 늦게 가는디 방죽 위로 들어가고 자프더리야. 길이 훤허니 써갔고. 그서 방죽 위를 들어갔더니, 풍덩 들어간 게 캥, 허고 나가더리야. 근디 그 여우가 그 술 먹은 이를 돌라먹은 거여. 옛날에 일정 때 그 면장이, 그 면장네 방죽이 있었어. 일정 때는 그 물이 귀했잖여. 크게 방죽을 팠어, 자기가. 면장허고 그런 게. 듣기로는 하남제 듬벙이라고 그려, 하남제 듬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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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에서만 먹는 특별한 음식이 있는지 물음. A3 어르신께서 새롭게 자리에 동석하심.)
A2 : 청송 심씨들 시조, 대한민국 8대 명당 옆에서 살았으니까 8대 명당에 대해서 그 사람이 잘 알어.
B2 : 거기가 어디입니까?
A3 : 남당산. 남당산이 함열면 남당리에 남당산이 있어요.
B2 : 거기가 어떤 지형의 명당입니까?
A3 : 그게 거북이 구슬을 물러 이렇게 들어가는 형상이라고 그러대.
B2 : 그 명당과 관련된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A2 : 경상도 청송서 상여를 매고 여기 오는디 20일도 안 걸렸디야.
A3 : 지금 묘에 묻힌 분이 아주 부잣집 살던 사람인데, 죽을 때가 되았는디 아들이 물어봤어. 아부지 돌아가시먼 신유지가 어디냐고. 그러니까 내가 운명을 허면은 어떠한 어떠한 분이 와서 그것을 인도헐 것이다. 그르믄 그렇게 따라라, 그 지관을 인자 온다고. 인자 그런가 보다 했는디 아닌 게 아니라 그 분이 작고허시니까 지관이 왔어. 그래갔고 행상을 경상도서부터 모시고 여그 함열까지 온 거여. 15일인가 20일인가 걸렸디야, 오는디. 그래갔고서나 바로 남당산 앞이 하조라는 마을이 있어. 하조마을 앞이 가서 경상을 시켜놓고 그 묫자리에 신씨들, 말허자먼 사당이 있었어. 신씨들 사당이 거그가 있었는디 지관이 허는 말이 저 사당을 부시고 거그다가 묘를 써라. 그러고서나 그렇게 허면 그 신씨들이 놔두려고 허겄어. 긍게 인자 거그서 경상도 온 사람들이 가서 인자 물어본 거여. 지관이 이 사당을 부시고 여기다 묘를 쓰라고 허는디 허락 좀 해달라고. 그러니까 인자 신씨들도 난감한 일이지. 그 멀리서 수십 명이 와갔고 제각을 부시고 묘를 쓰게 해달라니 이거 단독이로 허락헐 수도 없는 일이고. 지금으로 말허면 집안 총회를 열어갔고 팔어버렸어. 묘 쓸 사람이 (이유 없이) 여기까지 왔겄냐, 그러니까 우리가 허락을 쾌히 허자. 그래갔고서나 거그다 묘를 썼다는 거여. 그리갔고 심씨 이세조는 세종대왕 시절이여. 제 이세대가. 근데 그때부텀 지금까지 정승판사, 장군이 떨어지들 않여. 그 묘를 어떻게 잘 썼나. 지금까지도 국회의원, 장관 떨어지들 않여. 왜정 시대 아까 그서 얘기허드만 왜정시대 배가 고팠거든. 근디 왜정시대 때도 워낙 그케 잘 된 게 소 잡고 제사를 모셨어. 근디 동네에도 떡을 하나도 안 주네. 긍게 그 아까 얘기했던 저항권 얘들이 좀 실망스럽게, 야, 우리 저그다 오기를 좀 붙이자. 내일 상날이믄 오늘 저녁에 막 똥바가지를 갖다 막 상승에다 찌끄렸어, 왜정 때. 근디 그 사람이 그날 저녁으 동토나서 죽어버렸어. 똥 찌끄린 사람이.
B2 :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A3 : 누구한티 들은 얘기가 아니라 현실이라니까. 우리가 겪은 일이여.
B2 : 그 죽은 사람 상여 나가는 것도 보셨습니까?
A3 : 우리보담 한 너댓 살 더 먹었어. 상여는, 꼬마일 때 죽었응게 무신 상여여. 얘들들이 그렇게 헌 것인디. 그 벙어리 아들이거든, 벙어리 아들이 죽었어. 그 뒤로는 묘에다 해꼬지도 못허네. 그르고 거그를 가보먼 명당이라는 것이 지금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어. 그르믄 산이 이렇게 족허니 있으믄 묘가 이렇게 아래위로 두 장이 있는디 여그가 솔나무가 쪽허니 있어. 이 솔나무가 묘를 치다보고 다 이렇게 자빠졌어. 그냥 빤뜻이 큰 놈이 하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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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또 다른 옛날이야기 기억나는 거 있으십니까?
A1 : 그전 어른들한티 나는 들은 풍월인디 뭐 빗지락을 어떻게 잘 못 허먼 그것이 불이 돼갔고 기어나간다고 그러대. 빗지락을 이렇게 쓸다가 닳도락 쓰는 것이 어떻게 혀갔고, 둔갑을 혔나 어떻게 혀갔고 그것이 불이 돼갔고.
A2 : 여자 음부가 묻고, 빗지락에 묻으먼 여나 없이 도깨비가 된다고 혀. 여자가 빗지락 깔고 있다가 경도(?)가 묻으먼은 그런 현상이 있다대.
B2 : 그런 이야기 또 기억나시는 거 있으십니까?
A2 : 사람이 죽잖여.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은 사잣밥을 내놓거든. 밥 세 그릇을 해서 문 앞이다가 짚 깔고서 저 나물도 세 가지 해서 이렇게 붓어놓으면은 옛날에 왜정 날이 그렇게 배고파도 개가 안 먹어. 개가 자기 집에서는 양 보리밥을 줘도 잘 먹는데 훌륭헌 쌀밥을 해놔도 개가 안 먹어, 사잣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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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왜정시대에 일본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A1 : 잘 살았지요. 여그서 막 다미기라고, 이름이 다미기라고 있어. 농장주였지, 농장주. 아, 이 논 사놓고 도조 받는 거여, 쉽게 말허면. 그 밑이서 먹고사는 사람이 수도 없지. 우리는 고구마 그런 것 잘 몰랐는디 그 사람들이 고구마 그런 걸, 지금 감자있잖여, 그걸 개발혀갔고 그런 것 놔갔고 조선사람들 일시키고 막 그랬잖여. 그거 하나만 여그다 얘들 매길라고 갖고 가먼 막 두드려 패고 그러는 걸 봤어, 나. 얘들 배고픈게. 점드락 캐고, 남이 가지가는 거 일본사람들은 아주 질색이여. 그 자리에서 먹는 건 괜찮은디 느갔고 가는 것은 막 잡어서 패야. 그 성당면은 그 와출이라고 그 사람들이 개발해서 했어요. 그리구 저 전도, 관준이 둘이 살았어, 일본사람들이. 일정 때 막 말 타고 댕기고 허면 막 구경꾼이 싹 나왔으요.
B2 : 지금 황등 고구마가 유명한데, 그럼 이 고구마를 일본사람들이 개발한 겁니까?
A1 : 예, 그러죠. 그렇다고 봐야죠. 그 사람들이 주로 많이 했죠. 왜정 때 그거 다 캔 담이 요만썩헌 이시락 줏을라고 그냥 그 밭이가 하얀 혀. 그거 갖다 인제 얘들 매기고, 그 학생들 매길라고.
구술사진
구예서,최성식
김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