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춘포면 > 화평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춘포면 > 화평마을
구술자 최경래(1934)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 유래
전설 민담
철도이야기
구술일시 2012-08-24
비고 면담장소 : 춘포면 인수리 화평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24일 10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화평(花坪, 봉개)․북아시 : ‘봉개’는 봉개산에서 취한 이름이라기보다 포구 이름에서 산 이름과 마을 이름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진다. 예전에는 그곳이 포구였고, ‘춘포’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봄개→春浦’인데 그 ‘봄개’가 바로 ‘봉개’다.‘북아시’는 북쪽이라는 말.
- 익산시사 -

구술요지

1) 새로채록된 내용 :
- 봉개 : 화평, 신화, 삼례읍 어전리 이렇게 세 마을을 합쳐 봉개라 부른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사질 : 논이름. 땅이 단단하며 벼농사에 알맞았다.
- 도깨비 방죽 : 도깨비가 나와서 도깨비 방죽이라 함.


3) 전설 및 민담 :
- 포구에 대한 이야기 : 만경강에 수문이 생기기 전에는 바닷물이 화평마을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때 젓갈 장사를 하는 배들도 드나들었다고 함.
- 철도 이야기 : 처음에 철도를 대장촌이나 인수리 둘 중 한곳에 내려고 했다. 양쪽 지역 유지들이 서로 철도를 끌어오려고 대립했고 전해진다.
- 사엄에 대한 이야기 : 일본인 지주들이 임명한 조선인 관리자이다. 조선인들 사이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 오산사 이야기 : 나락을 전부 비어 제방에 쌓아놓았는데, 갑자기 홍수가 나서 쌓아놓은 나락이 전부 떠내려갔다. 그렇게 떠내려간 나락이 오산사 앞에 쌓였다. 그 후 오산사에서 그 나락을 차지했다는 이야기이다.
- 지큼이 이야기 : 구렁이가 나오면 그 집이 망한다고 전해진다. 만약 구렁이가 나오면 머리카락을 태워 쫓았다고 한다.

구술채록

A 최경래. 1934년.

B1 이동혁.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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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여기를 왜 화평마을이라고 부릅니까?

A : 나도 몰르지, 옛날부텀, 그전부텀 화평마을인가, 하여튼 왜놈들이 와가지고 화평마을이라고 현 것 같여. 그전에는 여그가 봉개라고 그랬어, 봉개. 말허자먼 이 동네가, 마을이 지금 전체가 봉개라고 허는디 거그가 저 행정구역이 익산시 춘포면 화평부락 하나 있고, 또 신화허고, 또 이 길 밑이로는 어전삼부, 삼례읍으로 되아있어, 세 부락으로 돼있어. 이장이 세 부락으로 돼있어, 지금. 봉개라고 허는 동네가. 화평, 신화, 여 삼례읍 말허자먼 어전리라고 삼 개 부락으로 되았어. 어전리 신평부락, 신평. 이리 가먼 길이 있어, 길이. 길 저짝으는 신평리고 이짝으는 말허자먼 화평이고 그려. 전체를 봉개라고 허고 그렇게 행정구역이 나눠졌다 이 말이여.

(신화마을은 현재 20호 정도. 화평마을은 현재 4~50호 정도. 신평마을은 3~40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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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 근처에 특이한 지명들은 없습니까?

A : 있지. 저짝으 뒤여로는 사질이라고 허고, 사질이 뭐 거그 경지정리 나가지고 거그도 그냥, 저 거시기 인수리 땅으로도 되야있고 저짝 오산리라고 춘포면 그 나눠져 있고 그려. 농사 짓던 것인디 거그는 땅이 말허자먼 땅이 단단혀갔고 나락 같은 것도 잘 되고 그려. 거그는 밭 작물 같은 걸 못허지, 한번 비가 오먼 후딱 빠지들 않여.

A : 공마당이라는 것도 있고. 공마당이라고 그 옆으가 있는디 거그는 땅이 하얀 해갔고, 흙이 하얀 혀. 그래가지고 벼가 잘 되도 않여, 거그 공마당은. 말허자먼 땅이 좋들 않여. 그전에 거그가, 말허자먼 이리 제방 막기 전에는 저짝이 시방 저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바로 그냥 이렇게 혀갔고 현재 저 이짝으로 이렇게 혀갔고 막 이리 시내 있는 디로 그렇게 빠져서 저 만경강과 맞었어. 그다보니까 농사 다 지어갔고도 옛날에 나 어렸을 적에 여섯 살인가 되아서 막았다는디 나는 막는 거 보들 않었어, 여기 만경강. 그랬는디 그전에는 농사 다 지어가지고 요때 비가 오먼은 기냥 저 미륵사지 있는 디서, 금마 있는 디서 물이 막 내려오니까 농사 지은 거 헛농사 짓고, 그런 거시기가 굉장히 많았었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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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멕이와 우물청소에 대한 이야기.)

A : 덕진못이라고 그건 저짝으가 앞에 뜰, 같은 뜰이라도 덕진못이라고 또 있었어.

B1 : 덕진못이라는 게 듬벙입니까?

A : 그렇지. 긍게 거그가 덕진못이 있고 옛날에는 저짝 앞에가 전부 쭉허니 연방죽이라고, 연으로 된 방죽이, 굉장히 큰 놈이 저 덕실리까장 쭉허니 있었어. 그랬는디 고놈을 말허자먼 기미년인가 그때 전부 미어가지고 경지정리를, 왜놈들이 경지정리 허니라고 다 그 방죽을 미어서 논을 맨들었단 말이여. 긍게 인자 말허자먼 저 고산 대야리 저수지를 새로 맨들어가지고 그 물을 이렇게 이용해서 농사를 짓게 된 게 그 방죽이 필요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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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는 여기가 포구였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A : 여그는 포구는 아니었어, 내가 알기로는. 여 우에까장 배가 이 익산강으로 저 우에까장 올라갔다고 그런 말이 있드라고. 여그서 쭉허니 강타고 올라가먼 여그 저 거시기, 선들이라고 허는 디가 있어. 선들 입석. 거그까장 배가 올라갔다고 허드라고. 만경강 타고 올라갔다고. 나 어렸을 적만 혀도 지금 요때 되먼은, 저 신복리라고 그짝으 그 만경강 물문 막기 전에는 막 바닷물이, 조수 들어와가지고 여까장 올라왔어. 올라오먼 말이여, 잉어가 이렇게 막 물살에 떠내려서 같이 막 올라와. 그러먼 말이여, 어른들이 막 낫 같은 거, 뭣 같은 거 갖고 가서 고기를 막 쳐가지고 잡어갔고, 그런 것은 봤어.

B1 : 그럼 그때는 만경강에 고깃배도 많았습니까?

A : 저그 시방 물문 막기 전에는 옛날 대장촌까장은 고깃배, 거그 와가지고 거그서 말허자먼 저 젓거리 같은 거 다 퍼가지고 거그서 젓장사허고 그랬었디야. 배가 들어와가지고 거그서 젓을 퍼서 젓을 담어가지고 팔고 그맀다 이 말이여. 포구였었지, 그때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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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산을 봉개산이라고도 부른다.)

(춘포산에 공동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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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대장역과 관련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내가 듣기로는 그전에 저 춘포 대장촌역이 있잖어. 거그 가서, 거기 사람들허고 여기 인수리 사람들허고 첫 번이 철로를 인자 내는디, 거기 인자 유지들허고 이짝 유지들허고 서로 이렇게, 서로 자기 구역으로 철로를 끌어올라고 거시기를 했던 모양이드만. 그때만 해도 대장촌은 왜놈들이 몇이 살고 있고 여기는 인자 왜놈들이 하나도 안 살고 왜놈들이 철로를 냈으니까. 긍게 대장촌에서 한 사람이, 우리 동네 여그 김용석(?) 씨라고 그 양반이 여그 앞집이 그리 이사와가지고 사는 사람인디 이 양반이 대의원이 되았어, 요는. 긍게 그 사람이 손을 들어갔고, 저짝으로 손을 들어서, 자기가 살다왔기 때문에 그래서 철로가 그리 가고 거그가 소재지, 면사무소랑 소재지가 거그가 되고, 그맀다고 헌다고 그런 말은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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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도깨비 방죽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 : 도깨비 방죽 그 대장촌, 바로 철로 그 저짝으 가서 시방도 방죽 같이 있어. 그 저 경지정리 혀갔고 그렇게 물이 시방도 그리 흘러나가는데 지금도 시방 방죽 거그가 있을 걸, 일부 남았을 걸?

B2 : 거기를 왜 도깨비 방죽이라고 불렀습니까?

A : 그건 나도 몰르는디 거그가 도깨비가 나왔응게로 도깨비 방죽이라고 혔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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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역의 화물 집적소를 마루고시라고 한다. 다른 곳으로 짐을 보내거나 보내진 짐을 찾아가거나 하는 장소.)

B2 : 일본 지주들이 대장촌에 많이 살았습니까?

A : 왜놈들이 많이 살았었어. 그래가지고 각 부락의, 모범부락에 인자, 큰 부락 같은 디다가 이렇게 좀 잘 사는 사람, 사엄이라고 두어가지고 그 사람들이 말허자먼 관리를 혀. 그래갔고 거그서 자기 말 잘 안 듣고 허는 사람은 막 논을 주었다가 또 뺏었다가. 그런 사람들이 있어갔고 그 사람들이 기냥 당장이, 지금으로 말허자먼 아주 독제를 했지. 횡포도 심허고. 자기기다가 뇌물 같은 거 갖다 주는 사람은 논 같은 거 좋은 거 떼어서 주고, 뇌물도 잘 안 주고 말도 잘 안 듣고 허는 사람은 주었다가도 뺏어서 다른 사람도 주고 막 그런 거시기가 있었지.

B1 : 그 사엄들은 해방되고 나서 어떻게 됐습니까?

A : 그런 사람들이 대개가 해방되고 나서도 그 사람들이 말허자먼 다 그 근방에서 신망 있고 돈 있고 부자 사람들이, 권력 있고 허는 사람들이 사엄을 혔기 때문에 별시럽게 타격을 안 받고 가만히 지나갔지.

B1 : 일본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A : 대장촌 같은 디는 일본사람들 거그서 자기가 살던 집을, 집 같은 거, 재산 같은 것도 자기 집에 와서 일허고 자기가 거시기헌 사람들 다 주고 가고 그랬다고 헌다고 그러드라고. 그 사람들이 다 물려받었다고 헌다고 그러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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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북아시라는 지명 들어보셨습니까?

A : 북아시가 여기 이 동네를 북아시라고 그러고, 저짝으를, 길 저짝으 신평리를 남아시라고 그러고 그맀었어. 시방 내가 사는 여그를 북아시라고 그러고, 신평 어전삼부 부락을 남아시라고 그랬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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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절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르십니까?

A : 여그 오산 사찰이라고 있어. 지금도 시방 절이 있어. 시방도 가먼 있어, 있는디 그 절이 원래 저 여자가 스님이었어, 여자가. 근디 지금도 거그 가먼은 그 돌 같은 것이 그렇게 모시고 있다고 허드라고. 부처도 있고, 돌을 모시갔고 돌을 이렇게 거긋다 인제 집을 지어가지고 기도도 드리고 허는 거시기가 있는디 그 양반 있을 적으는 거그가 유명해갔고 손님도 많았어.

B1 : 어렸을 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기억나시는 거 있으십니까?

A : 그전에 내가 들은 얘긴디 그전에 여그 저 제방 막기 전에 나락을 다 비어가지고, 다 묶어서 가리해놓고 그러잖아. 집이다 갖다가 나락 훑기 전에 느닷없이 막 비가 와가지고 함몰져가지고, 저그 미륵산에서 물이 막 내려오니까 그 나락 비어서 그렇게 말허자먼 묶어서 쌓아놓은 놈이 그 물로 떠내려가서 그 절 앞으로 싹 떠내려갔어. 거그 가서 다 있었디야. 오산 절 앞에. 그르니까 저 우에서부텀 막 전부 물에 쓸려서 와가지고 쌓여 있는 거 누구 것인가 그걸 어떻게 분간허겄어. 그래가지고 고놈을 그 절에서 다 거저 먹어가지고 부자 되았다고 그런 얘기도 있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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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지큼이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 : 그것이 자주 나오고, 구렁이 같은 것이 나오고 그러먼 그 집이 망헌다고 어찐다고 그런 얘기가 있었어.

B1 : 구렁이를 못 나가게 막지는 않았습니까?

A : 긍게 그런 것이 나오고 그러먼 막 머리카락 같은 거, 거시기 갖고 가서 태워서 연기 내먼, 그먼 인자 도망가겠그름 그렇게 허고 그랬지. 긍게 머리카락 태우고, 머리카락 냄새 나먼 인자 슬슬 없어져. 쫓아내기 위해서 그랬지.

구술사진

화평마을 회관


화평마을 최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