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춘포면 > 입석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춘포면 > 입석마을
구술자 서경석(1959)남자
구술자 염창식(1928)남자
면담자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지명 유래
전설 민담
구술일시 2012-08-26
비고 면담장소 : 춘포면 쌍정리 입석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8월 26일 13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민담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입석(立石, 선들-선돌)․윗선들․아랫선들 : ‘입석’은 본 이름 ‘선돌’의 한문자 표기다. 선돌이 지금도 서 있다. 예전 흑석부곡(黑石部曲)에 들어가는 입구였다고 하나 확실한 증거가 없다.
- 익산시사 -

구술요지

1)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 화산 : 우석대학교 앞에 있는 석탄이 나오던 산이다.
- 우렁골 : 입석에서 삼례를 갈 때 지나가는 길이다. 골짜기 위에 수렁이 있었는데 그 수렁에서 우렁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 지야골 : 지야막이라고도 한다. 지금 왕궁 온천자리이며, 옛날엔 이곳에서 그릇을 구웠다고 한다.

2) 전설 및 민담 :
- 입석마을 장터 : 입석마을에 앞에 있는 도로가 옛날에는 한양 가는 길이었다. 그때는 주막도 많고, 난장(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 사엄 이야기 : 일본인 대신 마을을 관리해주는 사람을 사엄이라고 하며, 그 권한이 무척 강해 횡포가 심했다. 해방 이후 다른 동네에서 이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사엄이고, 동네 사람들한테 많이 두드려 맞았다고 한다.
- 나무 자르고 벌 받은 이야기 : 입석마을에 커다란 고목나무가 있었다. 하천을 넓힐 때 나무를 잘랐는데 그때 나무를 자른 사람이 똥통에 빠져 죽었다. 나무신의 벌을 받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구술채록

A1 서경석. 1959년.
A2 염창식. 1928년.

B1 이동혁.
B2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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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동네 이름이 입석인데 그 입석이란 뜻이 한문으로는 설 입 자, 돌 석 자를 써갔고, 긍게 선돌이라고, 돌이 서있다 혀갔고 입석이라고 불르고 있거든. 그 돌도 이 앞에 들어오다 보면 봤는가 모르겄는데, (마을 표지석 옆에) 그게 있는데, 그게 그전부터 그 돌이 있는지만 알았지 정확헌 그 돌의 유래라던지 그런 건 잘 모르고 있거든. 원래 그냥 선돌이라고 혀, 선돌. 그걸 한자로 허면은 입석이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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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옛날에 여기가 그 백제시대 때는 저 왕궁이 저 궁터 아녀. 그러니까 인제 한양 같은 디 인자 댕길라면 이 길로 인자 다녔을 거 아녀. 원래가 이 앞 도로가 일번국도거든? 지금은 인자 저쪽 뒤가 그 저, 새로 난 도로가 생기갔고 그쪽으로 인제 일번국도가 넘어갔는데 전에는 여그 이 동네 한가운디로 간 도로가 일번국도여. 그래갔고 옛날에 한양 댕길 때는 다 이 길을 거쳐서 갔다고. 그래갔고 여기가 그전에는 이 쪼그만한 그 장도 서고 그랬었다고. 그런 소리를 어른들한테 들었던 거여.

B1 : 그 장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A1 : 큰 장은, 그런 장은 아니고 그게 인제 소규모 장 같이, 그런 걸로 알고 있지.

B1 : 그 장이 언제 서던 장입니까?

A1 : 지금 그 나이를 드신 분들도 잘 몰르드라고, 그걸. 긍게 그 우에 대부터 이렇게 내려오던 얘기니까, 정확헌 그 유래는 몰르고 있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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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어르신 자리에 동석.)

B1 :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 기억나는 거 있으십니까?

A2 : 이 부락은 인자 옛날부텀 녹두밭 움머리라고, 촌에서 말허자먼 못 사는 동네를 이야기허는 것이여, 녹두밭 움머리라고. 긍게 땅이 완패돼갔고 딴 곡식이 안 되니까 녹두를 간다는 게 녹두밭 움머리여. 여기가 큰 유래는 없고 훌륭한 사람은 나온 바가 없고 옛날에 여그 부락을 인제 이조 때, 여그가, 이 선들부락에 장이 섰다는 거여, 장터.

A1 : 선돌인데 인제 흔히 우리가 불르기를 그냥 선들, 선들 그러거든. 원래는 선돌이 맞지.

A2 : 옛날에 이조 땐가? 옛날에 장이 섰었디야, 이 부락에.

A1 : 그전에는 막 주막도 많었었는가벼, 여그가. 긍게 지금 저 길 있잖요. 그전이 그리, 삼례를 그리 전부다 걸어댕겼잖어. 이렇게 말 타고 그리 많이 댕기지, 과거 시험 보러 댕기고.

A2 : 맞어, 그게 과거길이여. 그리고 춘향전에 나오잖여, 능지울 통시암 그리 댕겼어. 그 저 노랫소리에 나와.

(타지에서 이사 온 사람이 많았다. 제일 컸을 때가 70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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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마을 근처에 특이한 지명은 없습니까?

A2 : 여그는 없고, 여그 이 들어오다보먼 그 비석 하나 있지, 가게 앞에. 근디 여그가 애초에 선돌이여, 선돌. 지명이 그래갔고 말허자먼 행정구역 이름도 입석이여, 입석. 긍게 그래갔고 여그서 저 한 삼백미터 떨어진 논 가운데가 있었는디 해방 후에 우리 마을에서 이건 유래도 입석이고 돌이 서있으니까 우리 마을 것이라고 그때 갖다가 여그다 세웠어.

A1 : 새마을 허먼서 이리 옮겼어.

(선돌에 구멍이 두 군데 뚫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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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정시대 때 일본사람이 두 명 살았다. 소작농을 두고 농사를 지었지만 농장이라고 부를 규모는 아니었음.)

B2 : 사엄의 횡포가 심했습니까?

A2 : 그럼. 사엄은 권한이 얼매나 심했다고. 논도, 소작 같은 것도 주었다 뺏었다 지 맘대로 했어. 권한이 얼매나 시었다고(셌다고).

B2 : 해방 후에도 잘 살았습니까?

A2 : 해방 후에도 인자 그놈들 먼이 일본 때 그 착취헌 재산이 있응게 잘 살었을 테지. 사엄이라는 것은 일본놈들이 농지주인디 그 사람 관리히주는 사람이여. 자기네들이 돈 주고 논 사갔고 각 부락에다 사엄이라고 관리인을 두었어. 긍게 그 사람들이 권한이 좋았지.

B2 :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해코지하진 않았습니까?

A2 : 두드려 맞은 사람들 많지. 이 동네 저 강신근 씨라고, 그 사람이 여그 이 동네 살았었는디 딴 디서 이사 왔어. 그 사람이 학식이 좋아. 그래서 왜정 때 이장을 혔었어. 그래가지고 착취를 혀갔고 막 지 맘대론디 해방돼갔고 이 동네 사람들한티 두드려 맞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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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여그가 난장도 섰거든? 사람이 그만큼 여그가 꼬였다 이 말이여.

A2 : 난장이라고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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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화산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2 : 화산은 저 삼례 가먼 저 우석대학교 앞에.

B1 : 왜 거기를 화산이라고 불렀습니까?

A1 : 거그 탄도 나온다고 했었잖여, 한때. 긍게 인자 화산이 일어났던게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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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여그 저 우리가 부르는 우렁너머는 왜 우렁너머예요?

A2 : 우렁골이라고 그려. 유래는 잘 몰르지만 우렁너머라고, 우렁골이라고 여지까지 불러왔어, 그 지명을.

A1 : 우리가 봤을 때는 우렁, 여그가 쪼그만 야산이 있응게 우렁너머라고 그러는디 그 지적도 같은 그런 디는 우렁골로 나오드라고.

B2 : 삼례 갈 때 거기를 넘어갑니까?

A1 : 그러지, 옛날에는 글로 넘어갔어. 지금은 인자 길이 새로 났으니까.

A2 : 거그 가먼은 그 냇갈 밑이 골짜기 있잖아. 그 골짜기 우에 가서 그 숲이가 수렁이 있어.

B2 : 그 수렁에서 우렁이 많이 나왔습니까?

A2 : 그렇지.

A1 : 우렁이 많어서 우렁골이라고 혔는지 아니면 골짜기 생김새가 우렁이 같이 생겨서 우렁골인가 인자 그 유래는 잘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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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도깨비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2 : 그전이는 앵금리 근방으 가서 도깨비불이라고 이렇게 두 개 되얐다 세 개 되얐다 네 개 되얐다 그래갔고 없어졌다 그런 도깨비불을 본 일이 있어.

(앵금리에서 금덩어리가 나와 앵금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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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지큼이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A2 : 지큼이라는 것이 사람 눈이는 안 띠여. 근디 딴 사람 눈이 띠갔고 그 집이 나가먼 그 집이 망헌다고 혔거든. 그런 것은 인자 어느 지방이고 유래가 있을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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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마을에서 신성시 여기던 나무나 바위는 없었습니까?

A2 : 그전이 여기 다리 옆에 거그 가서 나무가 있었어. 그 나무가 내 아람으로 한 세 개가 되는 고목나무가 있었어, 다리 바로 옆에 가서. 근디 지금은, 그전이는 이런 하천이 쫍아가지고 지금 새로 하천을 개량해갔고 새로 내는 통으 그것도 없어져 버렸어. 옛날에 그거 있었어. 고목나무라고 큰 나무가. 왜정 때, 오래 되지. 지금 한 90년도 더 되겄네. 내가 어려서 봤으니까. 근디 그 나무를 비어갔고 저 뭐여, 일년네 할아부지 그 양반이 그 나무를 비었는디 똥통을, 죽었는디 똥통에서 죽었다고 그러드라. 그런 말이 있는디, 죽으니까 인자 그렇게 혀서 죽었다, 나무신한티 거시기혀서 죽었다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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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기차 탈 때 여기 사람들은 주로 삼례로 많이 갔습니까?

A2 : 삼례에서 탔지. 전주만 갈라도 삼례 가서 탔고, 그라느먼 걸어댕기고.

B2 : 어떤 사람들이 기차를 많이 이용했습니까?

A2 : 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지. 이리 통학, 전주 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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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 : 똥골목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A2 : 삼례 우석대학교에서 쪼금 내려오면 똥골목이라고, 근디 지금은 황금동이라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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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옛날에는 물 맞으러 어디로 가셨습니까?

A2 : 저 덕진, 지금 그 덕진공원, 단오날이라고 덕진공원 가서 머리 감고 뭣 허고 허잖아.

A1 : 그전에는 갔지만 지금은 잘 안 가죠.

A2 : 그전 같이는 안 가도 지금도 가, 덕진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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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 독 굽던 데를 지야골이라고 불렀습니까?

A1 : 지야골? 지야골 그렇게 불렀겄네. 우리가 여그 그쪽을 뭐 지야막이라곤가 그렇게 불렀죠?

A2 : 응, 맞어, 지야막. 저 그릇 굽는 디가 있었거든. 온천, 저 온천자리여. 거그가 지야막.

A1 : 지금 왕궁 온천자리.

구술사진

입석마을


입석마을 구술전경


제방 놓기 전의 만경강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