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명 : 춘포면 > 심암마을

구술 기본정보

구분 내용
마을명 춘포면 > 심암마을
구술자 강희택(1933)남자
구술자 김선규(1937)남자
구술자 이남준(1946)남자
면담자 박태건, 이동혁, 이호형
구술요지 마을유래담
지명유래담
전설 및 민담
민속
구술일시 2012-09-01
비고 면담장소 : 심암마을 마을회관
면담시간 : 2012년 9월 1일 15시 50분
내용 : 지명유래 및 심암마을에 대한 인터뷰 진행.
키워드  

문헌내용

심암(心岩) : 밭가운데에 미륵산에서 가져왔다는 전설이 붙은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무엇이든 빌면 이루어진다 하여 ‘마음바위→心岩’이라 한다.

『익산시사』

구술요지

1) 새로 채록 된 내용 :
- 지명유래: 옛 지명은 '믿음골'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곳에 물구멍이 99개가 있어서 물이 아주 풍부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믿고 살수 있다고 해서 믿음골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2) 유적, 터 및 기타지명
- 숭늉 밥 그릇: 마을의 수원지가 좋아서 숭늉 밥 그릇이라고 불렸다.
- 원정 강참봉: 원정마을에 천석꾼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 서빠대기: 마치 소의 혀와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 배달이: 옛날에 배가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국논: 임금에게 진상하는 쌀을 재배했던 논이라고 한다.

3) 전설 및 민담
- 돌박제: 흙 속에 돌이 묻혀 있는데 그 흙이 벗겨져서 돌이 보이면 마을에 흉사가 생긴다고 한다.
- 도깨비 불: 돌박제에서 공동묘지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목격했다.
- 개건네: 마을 앞 개울은 건너는 곳인데 '솜리'를 갔다 오다가 도깨비한테 홀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 구렁이: 원정마을에서 구렁이 한마리가 간장독을 한바퀴 돌고 나왔는데 그 집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소금 장수 묘날: 장개산이라는 산 밑에 소금 장수들이 자주 쉬었다 가는데 거기서 한 소금장수가 죽었다고 함 그래서 거기에 묘를 써주었는데 그 자손들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 원정마을: 옛날에 인민군이 원정마을에 주민들을 전부 모아놓고 죽이려 했다가 실패 한 사건이 있었다.

4) 민속
- 마을 금기: 상여는 우물이나 당산을 못 지나가게 했다.

구술채록

A1: 강희택 (80) 1933년
A2: 김선규 (76) 1937년
A3: 이남준 (67) 1946년


B1 박태건
B2 이동혁
B3 이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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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마을 이름이 왜 ‘심암’마을이 되었을 까요?

A3: ‘심암’마을 유래 같은 것은 좀 아는데 내가 듣는 바로는 ‘믿음골’이라고 그랬자녀? 아 근데..

A1: 가만 있어봐 내가 제일 연장자이기 때문에 내가 듣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듣던 이야기로는 여기가 저 지금 도로 표시한 것도 ‘미등골’이라고 해놓았어요 근데 ‘미등골’이 아닙니다 ‘믿음골’이여 근게 여그가 ‘춘포면 신동리’라고 해가지고 우리 ‘심암’이 있고 긍게 이 동네가 ‘믿음골’이에요 그리고 저기 뒤 동네가 ‘원정’이라는 디가 있고 여그가 ‘노적’ 이슬 로자에 다가 해서 ‘노적’ 저 넘어가서 ‘원신동’ 그렇게 해서 여기가 ‘신동리’거든요?

A3: 4개 부락.

A1: 인자 그중에서 우리 ‘심암’마을이 마음 심에 바우 암 그래서 이게 저 ‘믿음골’하는 것이 여그 지금 임시 검문이 밖에 있습니다만 거그가서 이 옛날에는 그 지하수 파기 전에 몇 년이 되었을까? 한 거기가 참 좋은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그래가지고는 우리 세대 이 마을만 한 50세대에다가 저 위에 동네가 한 30세대 되어가지고 항-상 그물을 먹고 살았어요 그래가지고는 자고나면 헌 12시가 넘을 때 되면 그리 물이 항상 넘쳐와 그런 좋은 우물이 있었는데 지하수들을 파가지고 그것이 완전히 말라 버렸습니다 근데 그 지하수 파기 전에는 그 물로 이 밑에서 약간의 농사짓는 데도 도움이 됬습니다 그리고 지금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컨터리 쪽으로 가면 골프 연습장이 있어요 고 좌측에 지금도 그 자리가 있습니다만 우 비 우자 저 ‘믿음골’이에요 거그가.

A2: ‘우믿음골’

A1: 어 그래서 인자 여그가 옛날부터 농사짓고 뭐하는데 아주 좋은 전설에 의하면 물구멍이 99개가 있었다고 그래요 그런 좋은 수원지 였어요 근데 저 짝에 자리는 있는데 공단에서 들어와서 지하수 파고 뭐더고 해서 완전히 안 나 드라구요.

A2: 저 물구녕이 다 막혔어요.

A1: 그러고 인자 옛날 말로 수렁이 있어요 그 밑에로 근게 물이 좋으니까 그 밑에로 수렁이 있어서 기계도 못 들어가고 소도 못 들어가고 사람이 굉이로 파서 농사를 지었던 그런 지역인데 인제는 그게 다 말라가지고 기계가 직접 들어가서 농사짓고.

B1: 그러면 왜 ‘믿음골’이라고 했을까요?

A1: 긍게 고 뜻이죠 거기서 물이 잘 나고 그러니까 믿고 살을 수 있었다는 그런 전통이 그래서 옛날 양반들은 제가 어렸을 때 그 나이 많이 자신 분들은 ‘믿음골’이라고 하고 ‘심암’마을 이라고 하면 잘 몰라요 그래서 여기서 이리 올라가는 저 ‘발산’이라고 하는데 가는데 걸어서 다닐 적에 이 길로 무-지하게 사람들이 많이 다녔어요 그래가지고는 시내에서 통로가 가는 길이 있었고요 그리고 믿고 사는 마을이다 그래서 그 물로 인해서 이 아래 농사를 지을 수 있었죠 큰 가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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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그렇게 좋은 우물이면 이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3: 우물 이름은 없고.

A1: 그 인자 그 뭐라고 하냐면 ‘우믿음골 방죽’ 그런 식으로 옛날에는 방죽으로 전설이 내려왔죠.

A3: 그리니까 회장님이 말씀하신 99개 물구녕이 있고 그 밑에로 전부 수랑논이고 근게 옛날에는 기계로 농사를 안 짓고 지게 인력으로 지으니까 항시 논에 물이 있으니까 ‘숭늉 밥 그릇’이요 딴 곳은 못 먹어도 이 고을은 곡출이 나는 거여.

B1: 아- 그래서 ‘숭늉 밥 그릇’ 이라고 불렸나요?

A1: 그렇치 그런 게 수원지가 좋다 이 말이여.

A3: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런 데는 못 먹어도 거그서는 나락 수출이 나오거든.

A1: 근게 여그는 금년 같은 가뭄도 초년에는 가물었자나요? 그런 데도 이지 저기가 ‘대하리’에서 오는 물 지금은 고놈을 품어서 올려요 근디 그때는 우리가 못 봤어요 그러며는 여기가 모 하나도 못 심어요 예를 들어서 금년 같은 가뭄이었다면요 거의 하나도 못 심어요 그 물 내려오는 지역 까지만 모를 심을 수 가 있었지.

B1: ‘믿음골’이라는 지명이 참 살기도 좋고 부자도 많았겠네요.

A1: 아까 그 ‘원정’이라는 동네에 가서요 ‘강참봉’이라고 하는 분이 살았었는데 그때 그 양반이 천석꾼이에요 그런 부자가 살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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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심암’마을이면 무슨 바위가 있을 법도 한데요?

A3: 저기가면 ‘돌박제’라고 하는 데가 있는데.

A1: 근디 인자 고것이 거그가 흙 속에 바위가 묻혀 있다고 그러는데 우리도 그것을 몰랐어요 있는지 없는가 저기서 우스운 이야기가 있긴 있어요 저기가며는 ‘돌박제’라고 하는 제가 있는데 그 제가 저 넘어 ‘원신동’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근데 거기 보면 옛날에 그 그 그것이 벗겨지면 흙이 벗겨진다고 했지?

A2: 근게 그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인데.

A1: 전설입니다 그 저 ‘돌박제’라는 제가 이렇게 높이 있었는데 그것 벗겨지며는 그 동네 처녀들이 지금 말하자면 바람난다고 그러드라고 그래 가꼬 와가지고 그 흙을 덮었어요.

B1: 어느 때요? 혹시 특정한 시기가 있나요?

A1: 아무 때나죠.

A2: 그리고 저 정신 질환자가 생긴다고 해서 더 더군다나 그랬죠.

B1: 아 그러니까 돌이 나타나면 안 되는 거군요.

A1: 아하하 그렇지.

A2: 예에에 하하하.

A1: 그래가지고 그 참 솔찬이되었어 그 수일이가 전설에 고향에다가 그걸 한 번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A2: 우리 부락은 정자나무가 제일로 상징이었었고 그리고 여기는 외지에서 오는 그 이주민들이 별로 없었어요 요즘에서나 사람이 좀 들어왔지.

A1: 어 요즘에서나 그렇지 그전에는 저 ‘원정’이라는 하는 동네에가서 ‘강참봉’이라는 분이 살았기 때문에 그 강씨들이 좀 많았고 이 동네 아랫동네는 정씨들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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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도깨비 이야기나 귀신 이야기 들으신 것 있으신지요?

A1: 도깨비 이야기보다도 이 저 동네 저 안에 가면 옛날에는 그 요람에 있는 변소간이라고 하거든 그전에는 화장실이라고 하지만 근디 인자 밖에 있는 것은 사투리 인가 몰라도 측간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인자 밖에 있다고 해서 ‘한디측간’이라고 했어요 그게 있는 디 거그서 귀신이 나온다고 하하하하.

B1: 그 귀신이 왜 나왔데요?

A1: 그 음침하니까 거그가 그런 게 거기가 귀신 나온다고 애들이 무서서 밤에는 거기를 잘 못 다녀.

B1: 어떤 귀신인지는 모르시고요?

A1: 인자 그런 건 없고 그리고 여기에 가서 저 넘어 가서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요세같이 날이 이상하며는 도깨비불이라는 걸 그건 저도 목격을 했습니다 그 저녁에 ‘돌박제’라고 하는 제에 가서 그 저녁에 인제 거기를 갔었는데 바로 앞에 한 300미터 떨어졌을까? 공동묘지하고? 이렇게 앉아 있는데 거 짝에서 뭔 불이 푹- 오드라고? 오다가 앞에 있는 놈이 없어져요 그러면 도 그 짝에서 또 이렇게 뛰어와요 그런 것은 저도 목격을 했어요.

B1: 사람을 홀리거나 그런 건 없었고요?

A1: 예 그런 건 없고.

A3: 옛날 공동묘지 저녁에 보면 무서웠어요.

A1: 아니여 그건 내가 실제로 목격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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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그리고 옛날에는 2키로 이상을 걸어야 큰 길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지금 교량이 없으니까 비가 오면 젖고 신발이 젖고 아주 ‘개근네’라고 하는 데가.

A1: ‘개건네’ 예 말하자면 건넌다고 여기 지금 올 적에 봤는지 모르겠지만 다리가 하나 있자나요 고것이 인자 옛날 말로는 개여 말하자면 똘 똘이 있는데 그게 다리가 없으니까.

A2: 그것이 우리 마을에서 ‘개근네’라고 그려 그때가 다리가 없을 때에는 이렇게 ‘솜리’를 가따 오던 가 섣달 그믐날 그런 때는 그 도깨비한테 홀렸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지.

B1: 주로 어떻게 많이 홀렸다고 하던가요?

A2: 그러니까 가던 길을 또 가고 또 가고 밤새-도록 돌아 댕겼다고.

A1: 예 그런 말은 있었어요.

A2: 수관씨 부인도 도깨비한테 홀리고 누구 부인도 홀리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때는 그 교량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다 도보로 그러고 소달구지 그리고 여기가 교통이 얼마나 불편한지 농사물도 이 지게로 지어다가 내야 했지.

A3: 여기가 ‘이리’도 10리 ‘삼례’도 10리 ‘춘포’도 10리 그래 가지고 여기가 있으면 잘 안 잡아가요 경찰 들어와서 잡을 려면 걸어와서 그래야 한게 허허.

A2: 여기서 다 도보로 다녔거든요? 그때는 ‘개건네’다리가 없었어 교량이 그때는 아-주 불편 했어 그때 도깨비한테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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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근게 보며는 저-기가 ‘천궁날’ 저그는 ‘서빠대기’.

B1: 무엇이라고요?

A2: ‘서빠대기’ 근게 여기서 보았을 적에.

A1: 옛날에 그 옛날에 지명이네.

B1: 그 지명이 어떻게 해서 생겼나요?

A1: 그전에 지명은 지금 저위로 길이 내려가는데 우리가 생각 할 때는 혓바닥이라고 하는 그런 뜻으로 했는 가 하여튼 ‘서빠대기’라고 그런 땅 이름있어.

A2: 그것이 ‘서빠대기’라고도 하지만은 ‘배달이’라고도 해 옛날에는 물이 거기까지 배가 들어왔다 해서 ‘배달이’

A3: 그리고 이 쪽에는 ‘청국날’이라고 하고.

A2: 한참 지나서 이 쪽이 산이 ‘청국날’

A1: 쪼마난 산이 있어.

A2: ‘청국날’로 나무하로 가자 그랬지.

A1: 옛날에 배가 들어왔다 그래서 거기서 배를 짭메 놓았다는 그런 자리가 그랬다고 그래요.

B1: 그 흔적이 있나요?

A1: 흔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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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또 다른 특이한 지명이 있나요?

A1: 근디 이런 말만한 지형은 없어요 근데 여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저 위에가면 저 나라 국자 ‘국논’이라는 곳이 있어요 근데 왜 그게 ‘국논’이냐 거기가 인자 그 아까 이야기 한 수랑이라는 논이 거기가 백혀서 가뭄이 없어 근게 딴 놈은 못 심어도 그 논을 심어 그래서 거기서 농사지은 쌀을 저 그때 왕한테 임금님한테 드렸다고 해서 그 논 이름이 ‘국논’이여 그건 지금도 우리한테도 내려와 그 논이 지금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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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구렁이에 관한 이야기 들어 보신 적 있으신지요?

A1: 그런 특이한 전설은 없고 옛날에는 고가를 헐면 구랭이가 나왔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

A3: 뭔 ‘원정’마을에서 어떤 집에 있는 구렁이가 간장독을 한 바퀴 돌고 나갔는데 그 집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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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근데 보면 여러 가지 비화가 많죠 그 지금은 거기가 ‘소금 장수 묘날’이라고 하는 디가 있자녀?

A1: 아 지금 익산 저 저 수원지 있자나요? 상수도 하는 데 거기 이렇게 돌아가는 디가....

A2: ‘장개산’인데 그게 ‘장개산’인데 ‘소금 장수 날’이라고 했어 거기서 쉬어 갔다고 소금 장수들이.

A1: 근데 그때 말로는 ‘소금 장수 묘날’이라고 했어요 근데 그 ‘소금 장수 날’ 거그서 소금장수가 쉬어가 다가 죽었어 그래 가꼬 거그다 묘가 있어요 그래 가꼬는 그 자손들이 부자가 되었데요 그 거기 명당이여 근데 지금은 그게 없어 졌어 도로 내고 그 수원지가 되었어 몰라 어디가 있는 가 모르겄는 데 거의 안 보여.

A2: 옛날에는 ‘장개산’에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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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참 기가 막히는 이야기네요.

A2: 옛날에는 여기가 ‘믿음골’ 큰 둘레는 여기가 살기 좋다고 해서 ‘믿음골’이에요 피난처다 외부에 침입이 없다 그러니까 ‘믿음골’ 어떤 면으로 보면 여기가 아-주 오지죠 여기가 ‘장화 없으면 못 사는 동네’

A1: 옛날에 여그가 6.25 사변 때에도 이 피해를 하나도 안 입은 동네에요 그리고 여기에 빨갱이나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

A2: 조금 있었어 있기는 있는데 여기 뒤 마을 가면 ‘원정’마을 가면 거기가 제실이 하나 있어요 거기다가 주민을 전-부 모아 놓고 무슨 연극을 하네 어쩌네 해가지고 거기를 인자 폭파 몇 사람 말 안 듣는 사람들 죽일 라고 했는데 그 정보를 먼저 미리 듣고 다 도망가 버렸어 허허 그러니까 허사가 되어버렸어.

A1: 인민군 낙오병이 2명 있었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여그 와서 거주하고 돌아 댕긴거여 그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총이 있었고 또 인민군이다 보니까 함부로 못 했어 그랬는디 그런 것을 한다고 하니까 그걸 절대로 못하게 했어 그 사람들이 말렸어 그날 저녁에 나도 거기를 갔었는데 하여튼 무슨 잔치를 한다고 주민들이 다 모았어 그래서 그걸 수류탄을 던질라고 했다는 데 가서 들어보니까 무슨 이상한 말이 들리드라고요? 그래서 나는 말하자면 그때 그것을 그 자리에서 듣고 도망을 했어.

A2: 그러니까 요 시찰 인물들은 다 도망가니까.

A1: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못하게 해서 그 사람들이 성과를 이루 덜 못 했어 그래서 여기가 피해를 안 입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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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마을에서 금기시 하는 것은 있었나요?

A1: 그때는 그런 게 있었지 아까 여기 우물 이야기 했자나요? 어서 그 한 저 주변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생겨서 옛날 생여로 운구를 할 때 그 우물 옆에는 못 가게 했어 절대 못 가게 했어 그래서 딴 데로 돌아가야 되 그리고 여기 넘어가는 데 당산이라고 못 가게도 하고 그랬어.

A3: 옛날에는 다 돌아갔어.

A2: 지금도 그런 동네도 많은 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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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어르신 그러면 마지막으로 연세와 성함을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A1: 난 강희택 80살.

A2: 김선규 76세.

A3: 이남준 67세.

구술사진

심암마을 전경


심암마을 이남준,강희태,김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