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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와 문화

낚시와 문화

-하정일 소장

지난주에 예당저수지로 밤낚시를 다녀왔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며 낚시를 한 탓에 집에 오자마자 하루종일 잠만 잤습니다. 부득불 칼럼도 한 주 쉬게 됐네요. 칼럼이 마음에 걸렸지만, 장마가 끝난 직후여서 오름수위의 끝자락인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때가 용존 산소도 풍부하고 먹잇감도 많아 붕어의 활성도가 높거든요. 수위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면 한동안 붕어 구경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폭염에 낚시하기도 힘들고요. 이런 시기에 글쓰기냐 낚시냐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나로서는 낚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황은 대박이었습니다. 한 50수 정도 잡았습니다. 몇 년 사이에 최고의 조황이었죠. 찌올림도 좋았고 붕어들의 힘도 대단했습니다. 씨알이 5치에서 7치 정도로 다소 잘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대물보다는 찌올림을 보는 것이 더 좋아졌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더구나 야광찌 불빛이 반짝거리며 올라가는 밤낚시의 캐미라이트 찌올림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낚싯대를 접고는 광시한우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평소에는 예당지에 오면 반드시 어죽을 먹습니다. 전국 최고의 맛이거든요. 내가 어죽을 워낙 좋아해서 이곳저곳의 어죽들을 먹어보았지만, 얼큰함과 담백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예당지 어죽의 맛을 따라갈 곳이 없습니다. 연전에 연구소 수련회를 이곳에서 하고 어죽을 먹은 적이 있는데,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하더군요. 김명인 선생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인하대 동료들과 함께 어죽을 먹으러 인천에서 예당지까지 갔다 오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무더워 뜨거운 음식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광시 한우마을에 간 겁니다. 광시한우 역시 예산이 자랑하는 먹을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예당지 어죽, 광시한우, 수덕사 산채정식 이 셋이 예산의 삼대 음식입니다. 광시한우는 자기 농장에서 기른 한우로 만든 것이어서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맛도 확실합니다. 더구나 이날 간 집은 육회를 곁다리 음식으로 내줬는데,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예산에 갈 일이 있으면 광시한우를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는 바입니다.

씨알이 잘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월척도 한 수 했습니다. 그런데 붕어가 아니라 배스였습니다. 예당지에도 마침내 배스가 잠입한 겁니다. 좌대 총무에게 물어보니 작년부터 배스가 보이기 시작했다는군요. 걱정스러웠습니다. 배스는 번식 속도도 워낙 빠르고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2/3 정도까지 먹는 탐식가여서 예당지가 순식간에 황폐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배스 낚시꾼들은 ‘캣치 앤 릴리스(catch and release)'라고 하면서 잡은 배스를 다시 방생하는 걸 낚시 매너로 생각하는데, 나는 붕어들은 전부 방생했지만 배스만은 그냥 좌대 위에 놓아둔 채로 왔습니다. 조만간 자연사하겠죠. 배스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에 수입한 외래어종입니다. 그런데 맛이 없어 사업을 포기하고 양식장에서 풀어줬는데, 그게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진 겁니다. 나는 ‘캣치 앤 릴리스’라는 매너도 배스가 맛이 없기 때문에 생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맛이 좋으면 왜 그냥 놔주겠습니까. 맛이 좋은 송어는 ‘캣치 앤 릴리스’ 하지 않거든요. 배스는 번식력이 좋고 탐식가인 데다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포식(捕食) 어종이어서 금방 우세종이 되어버립니다. 가령 팔당 같은 곳은 배스 때문에 붕어 씨알이 거의 말라버렸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름대로 응징한 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외래어종 혐오가는 아닙니다. 떡붕어나 향어나 송어도 외래어종이지만, 그 물고기들은 좋아하거든요. 내가 싫어하는 외래어종은 배스와 블루길입니다. 떡붕어와 향어와 송어는 우리 민물생태계와 조화를 잘 이룬 경우입니다. 떡붕어와 향어는 붕어나 잉어와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영역과 분수를 지키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송어는 노는 물이 달라 문제될 것이 없고요. 하지만 배스와 블루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번식력이 좋고 공격적인 포식어입니다. 대개 포식어들은 번식력이 낮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태균형이 맞춰지는 거죠. 하지만 배스와 블루길은 포식어인데다 번식력까지 극강(極强)입니다. 그래서 배스와 블루길이 들어왔다 하면 그곳은 순식간에 황폐해지고 맙니다. 토종 물고기의 씨가 말라버리는 겁니다. 붕어나 잉어뿐 아니라 이들을 먹이 삼아 살아가는 가물치 같은 어종마저 격감한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이들은 민물계의 종 다양성을 깨뜨려 생태균형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어류인 셈입니다. 비유하자면, 배스와 블루길은 민물생태계의 제국주의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스와 블루길을 ‘청소’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외래문화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외래문화와 토착문화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존한다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겠죠. 문화적 생태균형도 유지되고 종 다양성도 더욱 활성화되는 셈이니까요. 1970-80년대가 그랬습니다. 포크와 록이 전통문화와 교섭하면서 토착화되었고, 전통문화 역시 덩달아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포크에서 출발한 김민기가 민요와 만나면서 한국적 포크의 세계를 연 것이나 록으로 시작한 신중현이 전통 창 혹은 타령과 교섭하면서 한국적 록을 창안한 것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록과 포크의 현대성과 전통가요의 민중성이 결합하면서 한국적 포크와 록이라는 새로운 양식이 탄생한 겁니다. 마당극 역시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등장한 문화산업은 이러한 노력들을 일거에 무화(無化)시켰습니다. 문화산업의 가장 심각한 역기능은 문화적 종 다양성과 문화계의 생태균형을 파괴한 것입니다. 배스와 블루길이 그랬던 것처럼 문화산업은 문화계를 독점적 구조로 획일화시켰습니다. 경쟁이 상향평준화를 가능케 하는 데 비해 독점은 하향평준화를 만들어냅니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경쟁은 사실 독점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경쟁이란 제로-썸 게임이기 때문이죠. 제로-썸 게임의 결과는 독점 혹은 독점으로의 경향입니다. 독점은 표준화를 구실로 모든 것을 획일화시키려 합니다. 그래야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통한 이윤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문화의 경우 획일화는 개성의 말살과 그에 따른 하향평준화를 낳기 마련입니다.

흔히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을 획일주의적인 문화라고 비난합니다만, 지금의 문화산업이야말로 획일주의적인 문화입니다. 획일주의란 ‘내가 진리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성에 대한 확신 없이 어떻게 운동이 가능하겠습니까. 80년대 문화계의 전체 구도를 생각해봅시다. 종 다양성과 문화적 생태균형이 유지되고 있지 않았나요. 민중문화운동과 함께 록, 포크, 블루스, 재즈, 트로트까지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이었습니다. 민중문화운동이 경쟁을 촉발시키면서 다른 대중음악들까지 상향평준화되었다고나 할까요. 진짜 획일주의는 타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근본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경쟁이 아니라 독점이 획일주의인 겁니다. 자신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문화들 간의 경쟁, 곧 의견들의 경쟁은 종 다양성을 활성화시키고 문화를 상향평준화로 이끕니다. 80년대의 문화가 그러했습니다. 반면에 독점은 스스로를 절대진리로 특권화시킴으로써 자신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의견들의 경쟁 자체를 원천봉쇄합니다. 그 결과 종 다양성이 말살되면서 획일화와 하향평준화가 발생하는 겁니다. 90년대 이래의 문화산업이 만든 문화지형이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산업은 한마디로 시장 근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문화산업이 표준으로 여기는 것이 할리우드문화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산업은 일종의 문화제국주의이기도 합니다. 서구중심주의적인 감수성을 이식하는 선봉장인 거죠. 그것이 문제인 것은 그러한 외래문화는 우리 민중의 삶과 아무런 접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화산업은 배스와 블루길처럼 엄청난 탐식성으로 토착문화를 말살시킵니다.(이때의 토착문화에는 전통문화뿐 아니라 한국적 록과 포크와 같이 토착화된 외래문화까지 포함됩니다.) 외래문화에 의한 식민화가 진행되는 겁니다. 그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자유주의입니다. 자유주의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감수성까지 지배합니다. 이는 문화 세계화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2000년대의 한국문화는 종 다양성과 생태균형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문화적 디스토피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토착문화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토착문화 하면 곧바로 민족주의를 연상합니다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닙니다. 토착문화에는 문화제국주의에 맞선 대안문화적 잠재력도 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민중의 삶과 전통에 뿌리를 대고 있는 토착문화가 그렇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김민기나 신중현이 좋은 사례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신중현의 <하류인생>이란 노래를 들어보면 한국적 록의 대안문화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하류인생>>이란 영화의 테마곡입니다. 이 영화는 2004년에 상영된 작품인데, 임권택 감독의 영화 중에서 손꼽힐 만한 명작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함께 2000년대의 한국영화 가운데 제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테마곡인 <하류인생>입니다. <하류인생>은 록과 전통 창이 완벽하게 융합된 작품입니다. 록의 기법과 전통 창의 창법과 박자를 버무려 민중적 삶의 정한을 절절하게 표현해내고 있지요.(안타깝게도 2000년대의 획일주의 풍토 때문에 이 명곡이 사장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토착문화는 토착주의에 침윤된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외래문화를 토착화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처럼 말이죠. 토착문화에 관심을 가질 때 문화제국주의의 극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전통의 복원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전통의 창출입니다. 홉스봄도 ‘만들어진 전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습니다. 가령 노동계급의 ‘만들어진 전통’은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홉스봄은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때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민중의 삶에 기반하고 있냐는 것일 터입니다. 80년대의 마당극 운동이 그 적절한 사례일 것입니다. 마당극 운동의 성취와 좌절이 모두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문화적 종 다양성과 생태균형을 위해서라도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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