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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라는 정치문화와 이른바 강남좌파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문화와 이른바 강남좌파

-하정일 소장-

요사이 야권통합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야권통합을 위한 노력은 크게 두 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입니다. 반(反)한나라당을 캐치프레이즈로 하여 모든 야권이 하나의 단일정당으로 모이자는 주장입니다. 민주당은 특위까지 만들어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화배우인 문성근 씨도 꽤 오래 전부터 이 운동을 벌여왔고, 최근에는 빅텐트론이라는 신종 야권통합론이 제기되기도 했더군요. 말하자면 범야권 단일정당 운동인 셈입니다. 다른 하나는 통합진보정당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종북주의 논쟁을 계기로 갈라섰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다시 하나로 뭉치자는 겁니다. 이런저런 논란들이 있습니다만, 나는 분당과 통합의 과정이 나름의 내적 필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당은 각자의 정체성을 되볼아보고 새로이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차이의 존중에 바탕한 연대의 필요성이 인식된 겁니다. 사실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차이가 실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누구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거든요. 하나의 진리에 대한 집착이 의견의 다양성을 억압했던 거죠. 더구나 진리란 상대적인 것이고 역사적인 것이며 수행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들의 소통과 경쟁을 통해 진리를 만들어가는 역동적 과정이 필요한 겁니다. 과거의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이러한 역동적 과정을 볼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현재의 분당 상태는 의견의 차이를 진리의 차이로 착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자본주의 근대의 극복과 민중 주체라는 진리성-이념이라고 해도 좋습니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소위 진보주의자들조차 자본주의 근대의 극복과 민중 주체라는 비전에 회의적인 상황에서는 이러한 가치 공유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합의 당위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의 통합 반대론자들은 의견의 차이를 진리의 차이로 과잉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는 범야권 단일정당론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은 진리의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차이는 곧 진리의 차이입니다. 의견의 차이가 아닌 거죠. 진리의 기준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하나로 뭉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정치공학적 야합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논리가 당당하게 주창될 수 있는 것은 전례(前例)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원조가 바로 비판적 지지론입니다. 87년 대선 때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이 횡행했었습니다. 재야그룹이 평민당에 대거 입당하기도 했었죠. 2002년 대선 때에는 야권 단일후보라는 주장으로 비판적 지지론이 변형되어 재등장했었죠. 그때도 소위 운동권이 민주당에 대규모로 들어갔더랬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진보의 가치가 확산되었나요.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평민당과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내걸었던 명분이 진보의 확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10년 동안 진보의 가치는 오히려 위축되고 퇴조했습니다. 거꾸로 자유주의에 견인되었죠.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에 진보의 위기가 닥친 겁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제도화된 것도 그 10년 동안에였고, 사회 양극화가 극심해진 것도 그 10년 동안에였습니다. 그 10년 동안에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그 10년 동안에 구속된 노동자 수가 김영삼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 때 구속된 노동자 수보다 많습니다. 평민당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진보를 참칭하면서 이런 사태를 만들었으니 진보의 위기는 당연한 사태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칭 진보정권이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는데, 누가 진보를 반기겠습니까.

비판적 지지의 결과가 이러했음에도 또 다시 비판적 지지론의 변형들이 범야권 단일정당론,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빅텐트론 등등의 이름으로 속출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그것은 비판적 지지론이 일종의 습속 혹은 정서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문화가 된 셈입니다. 그래서 진보정당 지지자들조차 대통령 선거 투표장에만 가면 어디에 도장을 찍을지 고민하게 되는 겁니다. 혹시 내가 극우보수 좋아할 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죠.(저 역시 그랬었습니다.) 진보정당 후보의 득표율이 항상 진보정당 지지율보다 한참 떨어지게 나오는 것도 그래서일 터입니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들렸기 때문인 거죠. 누군가는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범야권 단일정당에서 진보의 헤게모니를 발휘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그 말 역시 87년부터 반복되어 온 상투어일 뿐입니다. 집권한다 하더라도 과연 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양보하려 할까요. 그 양보가 자본과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포기하는 것인데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라 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진보에 대한 이해가 나름대로 깊었던 사람들도 그걸 할 수 없었는데, 현재의 민주당이나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에게서 그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정당, 나아가 세력입니다. 진보정당 혹은 진보세력이 집권할 때에만 헤게모니의 교체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범야권 단일정당은 진보정당이 아닐뿐더러 진보세력이 다수가 될 수도 없는 정당입니다. 그런 정당에서 진보의 헤게모니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입니다. 따라서 진보적 가치의 확산을 바란다면 이제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문화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요컨대 정치문화적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비판적 지지라는 관습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전략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의식만 바꾸면 되니까요. 그러나 문화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주의가 그러하듯이 말이죠. 이 점에서도 대안문화의 역할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를 바꾸는 일에는 문화가 나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만이 무의식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이와 관련하여 우려스러운 것이 통합진보정당의 진행과정입니다. 거기서도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의 대표를 비롯한 일부 세력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적극적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전 대표도 국민참여당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어떤 정당입니까. 열린우리당의 변종 아닙니까. 그런데 열린우리당을 신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비판하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물론 소수이기는 합니다만, 그 변종인 국민참여당을 통합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참여당은 더도 덜도 없이 그야말로 자유주의 정당입니다. 북한 문제를 갖고는 분당까지 갔을 정도로 박 터지게 싸웠던 사람들이 어쩜 자유주의에는 그렇게 관대한 걸까요. 이념의 차이보다 의견의 차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걸까요. 아니면 자유주의는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북한은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 걸까요. 속내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참여당과 통합한다면 민주당과도 통합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국민참여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의견의 차이, 심지어는 스타일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참여당을 통합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국민참여당은 되는데 민주당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심사숙고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따져봐도 합당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면, 혹시 그것이 비판적 지지의 망령 때문은 아닌지도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해보았으면 합니다. 내게 국민참여당은 비판적 지지의 특공대처럼 보입니다. 말하자면 진보정당 내부에서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퍼뜨리기 위한 특공대라는 겁니다. 이는 대선 국면에서 국민참여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비판적 지지의 특공대는 정당 뿐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이른바 강남좌파가 그 대표적인 사례 아닐까요. 진보적 이념과 강남적인 생활양식이 결합된 이 강남좌파는 비판적 지지론과 친연성이 매우 높은 집단이라고 생각됩니다. 강남적인 생활양식이란 결국 자유주의적인 생활양식과 취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라도 자유주의정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판적 지지론의 원군이 될 거라는 말입니다. 강준만 교수도 지적했지만, 나 역시 강남좌파에서 강조점은 강남에 있다고 봅니다. 강남좌파들은 좌파에 강조점이 있다고 강변합니다만, 강남의 규정력은 문화와 무의식에까지 뻗어 있다는 점에서 이념과 의식에 국한되어 있는 좌파의 규정력보다 훨씬 깊고 강합니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허약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들이 말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온갖 특혜를 다 누리고, 학벌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자기 자식은 열심히 특목고니 유학이니 보내는 것도 그래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강남좌파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과 능력이 있는데 그런 특혜를 누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본주의사회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또 누구 말마따마 자식의 장래가 달린 문제인데 특목고나 유학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쉽겠습니까. 나 또한 그러한 유혹들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문제는 태도입니다. 강남좌파는 성찰의 대상이지 자랑거리가 결코 아닙니다. 이념적으로는 좌파임에도 생활양식과 취향은 자유주의적이라는 모순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국 교수의 이런저런 글들을 보노라면, 자신이 강남좌파라는 것을 마치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내가 강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좌파 이념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강남우파보다는 낫겠죠. 하지만 진정한 좌파라면 자신의 강남적인, 그러니까 자유주의적인 생활양식과 취향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강북우파가 더 문제라고 말하더군요. 맞습니다. 강북에 사는 민중이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강남좌파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강북우파의 문제와는 별개로 강남좌파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겁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강남좌파가 좌파 이념을 명분으로 자유주의적인 생활양식과 취향을 유포하고 있는 사태입니다. 과거에 문화좌파가 그러했듯이 말이죠. 자유주의적인 생활양식과 취향은 좌파를 민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존재전이’나 ‘노동자-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중의 삶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때 민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진보정당의 집권도 그럴 때 가능해질 겁니다. 이때 생활양식이나 취향 혹은 감수성은 결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말만 그럴 듯하면 뭐합니까. 삶이 정반대인데 말이죠. 앎과 삶의 일치라는 고전적 명제가 새삼스러워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 논리가 아니라 문화가 더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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