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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l>>과의 세 번의 만남

<<The Wall>>과의 세 번의 만남


-하정일 소장-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록 밴드는 핑크 플로이드입니다. 고등학생 때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 Time>을 처음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후 <타임>이 실린 앨범인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Dark Side of the Moon>>을 구해 전곡(全曲)을 들으면서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며 감탄을 연발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덕분에 음악이라는 것에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 최고의 록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임>을 비롯해 <브리드 Breathe>, <온 더 런 On the Run>, <머니 Money>, <더 그레이트 긱 인 더 스카이 The Great Gig in the Sky>, 그리고 표제곡인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등 앨범에 수록된 모든 노래가 하나같이 주옥같은 명곡들입니다. 그후 이것저것 뒤적여보면서 핑크 플로이드가 대단히 급진적이고도 아방가르드적인 록 밴드이고 이들이 추구하는 록을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월>>은 핑크 플로이드가 1979년인가에 발표한 앨범입니다. 나는 아마도 그 앨범을 80년대 중반 무렵에 처음 접했던 것 같습니다. <<더 월>>이 준 충격도 신선했습니다.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과 비교하자면, 훨씬 정교해지고 세련되어졌다고 할까요. 프로그레시브 록의 슬로건이 ‘록의 클래식화’였는데, 이 앨범은 그야말로 록을 클래식의 수준으로 정련(精鍊)시킨 음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아트 록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래서일 터입니다. <<더 월>>은 노래 모음집이 아니라 일관된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일종의 록 오페라입니다. 소설에 비유하자면, 연작소설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핑크라는 인물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전쟁, 파시즘, 획일주의, 전체주의, 가족주의 등에 대해 핑크 플로이드 나름의 급진적 비판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벽으로 상징되는 ‘현대’에 대한 묵시론적 비전을 표현하고 있는 앨범인 셈입니다. 노래 하나하나를 비교하면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보다 임팩트가 부족합니다만, 앨범 전체를 놓고 보면 일관된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어 내적 완결성은 훨씬 튼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더 월>>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더 월>>과의 두 번째 만남은 음악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더 월>>은 1982년에 알란 파커 감독에 의해 음악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알란 파커는 흑인 민권운동가의 살해사건을 추적한 <<미시시피 버닝>>과 2차대전 시기 미국 내 일본인에 대한 인권탄압 문제를 다룬 <<폭풍의 나날들>>을 만든 감독이지요. 나는 알란 파커가 작품성과 상품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드문 감독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음악영화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극 활용해 대단히 아방가르드적인 화면을 창출해낸 수작입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아방가르드 취향을 영상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낸 겁니다. 알란 파커는 표현주의적인 영상을 통해 앨범에 부족했던 임팩트 또한 한껏 강화시켰습니다. 이 음악영화는 음악과 영화, 밴드와 감독이 행복하게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것은 핑크 플로이드와 알란 파커가 진보적 이념과 아방가르드 취향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음악의 영상미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음악이 영화의 배경에 그치거나 영상이 음악의 배경으로만 기능하는 영화음악 혹은 음악영화가 아니라 음악과 영상이 서로의 잠재력을 현실화시켜주는 선순환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겁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죠. 1990년에 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기념하는 대형 콘서트가 하나 열렸습니다. <<더 월>>이라는 제목의 록 콘서트였습니다. 이 콘서트를 주관한 사람은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월터스였습니다. 이때는 핑크 플로이드가 이미 해체된 시기였고, 그래서 로저 월터스가 개인 자격으로 <<더 월>> 콘서트를 기획한 겁니다. 콘서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록 콘서트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을 저본(底本)으로 한 행사였습니다. 이 콘서트에는 스콜피온즈, 죠니 미첼, 필 콜린스, 밴 모리슨을 비롯한 록과 팝의 스타들이 대거 참여해 <<더 월>>에 실린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더 월>>이라는 앨범 타이틀과 베를린 장벽이 서로 조응하면서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 역사적인 콘서트였습니다.

나는 이 콘서트를 보면서 두 명의 가수를 ‘재발견’했습니다. 신디 로퍼와 시너드 오코너가 그들입니다. 나는 신디 로퍼를 마돈나 비슷한 그저 그런 가수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어나더 브릭 인 더 월 파트 2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를 열창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창력도 대단했지만, 신디 로퍼가 획일주의적 교육제도를 정면 비판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이미지와 너무도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콘서트를 이것저것 찾아보았습니다. 초창기 콘서트를 보니, 신디 로퍼의 가창력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Girls Just Wanna Have Fun>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무대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노래하는데도 호흡의 흔들림이 전혀 없는 겁니다.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또 다른 콘서트에서는 중년의 신디 로퍼가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Strawberry Fields Forever>를 부르더군요. 이 콘서트는 존 레논 추모 콘서트였는데,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는 존 레논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이 있죠. 비틀즈 시절의 일인데요, 라이벌인 폴 매카트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페니 레인 Penny Lane>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존 레논이 제대로 된 노래가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며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를 작곡했다는 겁니다. <페니 레인>도 좋지만,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는 비틀즈를 대표하는 명곡이 되었죠. 그 노래를 신디 로퍼가 블루스 풍으로 편곡해 부르는데, 솔직히 존 레논의 원판보다 훨씬 윗길이었습니다.

시너드 오코너는 IRA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록의 여전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U2를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맹비난했을 정도니까요. 나는 밥 딜런 콘서트에 찬조 출연한 그녀가 미국 관중들의 들끓는 야유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꿋꿋하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더 월>> 콘서트에서 시너드 오코너는 <마더 Mother>를 불렀는데, 이 노래는 매우 서정적인 노래입니다. 이 역시 그녀에 대한 내 선입견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시너드 오코너는 아일랜드 민요를 현대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가수였습니다. 그 노래들을 들어보니까 하나같이 아일랜드 민중의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서정적인 노래들이더군요.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부른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였습니다. 정말 절창이었습니다. 이러저런 가수들의 <글루미 선데이>를 들어보았지만, 시너드 오코너의 노래가 최고였습니다. 시너드 오코너는 단순히 여전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탁월한 가창력과 기본기를 갖춘 노래꾼이었던 겁니다.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민중가요가 저런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월>>과의 세 번째 만남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록 특유의 저항성과 민중성을 느끼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 콘서트는 하나의 거대한 스펙타클이었습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까지 동원되었더군요. 물론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이제 관례화되다시피 했지만, 아무리 아트 록을 표방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민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내게 <<더 월>> 콘서트는 앞으로는 자본을 욕하면서 뒷문으로는 자본을 불러들이는 이벤트로 보였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시드니 루멧인데, 그의 대표작인 <<허공에의 질주>>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학생운동 하던 시절의 한 사건으로 20년 가까이 FBI에 쫓기고 있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변혁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풀뿌리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클래식은 부르주아 음악이야. 록이야말로 민중의 음악이지.” 그렇습니다. 록은 노동계급의 욕구와 희망과 분노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민중가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비틀즈의 멤버들이 모두 노동자의 자식들이고, 그들이 음악활동을 시작한 무대도 노동자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들러 폭탄주를 마시던 펍(pub)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비틀즈의 록이 보여주는 소박미학 또한 노동계급의 미적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록에서 대안문화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대안문화와 민중성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젠가 한 번 자세히 논해보려 합니다. 여기서는 악기편성 문제 한 가지만 따져보겠습니다. 록 밴드의 기본 악기편성은 기타와 드럼입니다. 여기에 베이스가 추가되었고, 건반도 종종 들어옵니다. 악기편성부터 대단히 경제적이고 민중적입니다. 포크는 기타 하나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포크에서의 기타의 역할은 보컬을 보조 내지 보완해주는 반주(伴奏)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연주가 아닌 거죠. 반면에 록에서 악기의 역할은 보컬과 대등합니다. 요컨대 록은 악기와 보컬의 협연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인 셈입니다. 각설하고, 록의 악기편성은 록의 적정규모가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민중성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악기편성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람비도 가파르게 상승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일반 민중들이 콘서트를 보는 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겠죠.

프로그레시브 록은 록의 클래식화를 표방했다고 앞에서 언급했었죠. 그래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 대한 욕망이 훨씬 컸을 겁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이 신시사이저를 적극 도입한 것도 그와 관련이 깊습니다. 신시사이저를 통해 오케스트라 효과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겁니다. 바로 핑크 플로이드가 신시사이저를 록에 적극 도입한 선두주자입니다.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 음반의 제작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보면,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의 신시사이저 프로듀싱을 담당했던 이가 알란 파슨스입니다.(알란 파슨스는 신시사이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핑크 플로이드가 오케스트라 효과에 얼마나 갈급해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이 결국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까지 나아가게 만들었고, 그것은 록의 악기편성의 민중성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일반 민중이 록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겁니다.

록과 민중의 분리는 록의 저항성에도 심각한 훼손을 입혔습니다. 앞으로는 자본을 욕하면서 뒷문으로는 자본을 불러들이니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습니까. 이제 록의 저항성은 일종의 상투어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970년대가 록의 절정기이자 쇠망기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 록의 저항성을 대표한다는 펑크 록 또한 ‘스타일의 저항’으로 시종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본과의 결탁은 록에게서 근대극복의 비전을 빼앗았고, 이념을 잃은 록에게 가능한 저항이란 스타일의 저항 말고는 달리 없었을 터입니다. 하지만 스타일의 저항을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내게 그것은 또 다른 스펙타클로만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록의 흥망성쇠는 대안문화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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