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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역사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 박태건 수석연구원의 ‘지역 정체성 찾기’


▲ 익산, 역사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


■ 천 년을 부는 바람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낭림과 태백과 덕유를 거치고 다시 금남정맥의 줄기가 장안산, 마이산, 운장산을 거쳐 호남 서북에 이르러 그 힘찬 용틀임을 멈춘 자리에 솟은 미륵산.

서해를 건너온 대륙의 바람이 금만 평야를 바다인양 일렁인다.

미륵산은 이 초록의 바다에 솟은 곶 같다.

저 들판을 메운 벼이삭이 베어지고 다시 자라는 동안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이 땅에서 웅혼한 꿈을 꾸었다.

미륵사지의 당간지주를 만지면 역사의 온기가 만져질까?

익산출신 소설가 홍석영은 전라도사람을 비하하는 ‘개땅쇠’라는 말의 어원을 ‘객토인(客土人)에서 찾는다.

객토인은 타향 사람들을 일컫는 말.

조선 왕조가 열리면서 고려의 왕족과 귀족들이 쫓겨 온 것이 이곳 전라도다.

어찌 고려사람 뿐이겠는가?

삼국시대 말, 고구려 유민에 비해 유독 핍박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 백제 사람들이었으며, 고구려의 왕통에 밀려 이곳에 밀려온 부여인들이 백제의 기틀을 세웠던가.

떠도는 사람들의 정서는 한과 그리움이다.

천 년 전 이곳에 뿌리 내린 사람들이 20세기 근대화가 되자 다시 대도시로 떠난다. 익산사람들에겐 바람의 유전자가 흐르는 걸까?

익산은 바람의 땅이다.

이승과 저승의 관문처럼 솟아오른 미륵산의 반듯한 아미를 씻기우는 바람의 집.

익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륵산은 하나의 지명이라기보다는 동경이다.

조상 대대로 땅만 파먹고 사는 민중들은 서울의 지배층에게 수탈의 대상이었다.

수천 년 간 권력의 중심에서 조금은 비껴선 익산 땅.

하여, 이 글은 이 땅 구석에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이다.

모든 것은 작고 소외된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작은 바람이 천 년 전부터 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울로 불 것이다. 백 년전부터 난 철길을 따라 달려 갈 것이다.


■ 여성친화도시의 유래

백제가 멸망한 것은 하늘의 아름다운 곡선을 훔친 대가가 아닐까?

익산을 둘러싼 금마, 여산, 삼기, 낭상, 여산, 왕궁은 56억 7천만년 동안 수련해야 부처로 환생한다는 미륵의 호위장 같다.

서동설화의 배경이 된 금마, 사랑의 판타지를 역사의 의미로 믿었던 사람들.

고려시대엔 원나라 황후가 된 ‘기씨’의 출생이라 익주로 승격되었으며, 조선조 비운의 왕 단종의 비 명순황후의 고장이 이 곳이었다.

기다림은 우직함보다 인내의 여성성을 갖는다.

작가 윤흥길은 소설 『에미』에서 익산의 정서를 ‘어머니의 비손이’로 그려낸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여염집 뒷켠에선 어김없이 정화수가 모셔졌다.

그 흰 사기그릇 속에는 간절한 이야기들이 달빛처럼 내려앉았을 것이다.

천 년 전 서동과 선화의 설화가, 오백 년 전 황진이와 소쇄양의 애틋함으로 이야기되어 지는 곳.

이 땅의 수많은 ‘에미’의 정화수 속에는 세월의 풍랑에 흔들리며 차올랐다 이지러지기를 반복하는 이곳사람들이 달처럼 떠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승리의 기록보다 기다림을 배우는 달의 영토. 가족을 위해 비손이를 하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여성친화도시 익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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