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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와 공동체적 전통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 하정일 소장의 '지역 정체성 찾기'

▲ 지역문화와 공동체적 전통


근대 이전까지 지역의 고유성과 자율성은 상당 정도 보장되었습니다.

지역에 근거한 마을공동체가 전근대사회의 기본 단위였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중앙의 구심력이 강화되면서 지역은 중앙에 종속된 지방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심화의 압력은 자연스럽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도 급격히 변화시켰습니다.

지역민들의 마을공동체적인 생활양식이 소거되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온 표준적 생활양식은 장소의 고유성에 기반한 전통적인 지역문화를 무너뜨렸습니다.

근대는 장소의 고유성을 박탈해 공간(space)으로 추상화시켰습니다.

가령 지방은 서울 이외의 지역을 의미하는데, 이는 서울로부터의 거리에 의해 지역이 규정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지방은 장소의 고유성을 상실한, 서울에서 이러저러한 거리에 있는 공간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중앙을 표준으로 자리매김된 공간이 지방인 셈입니다. 그런 만큼 지방은 중앙의 동일화 요구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 자체가 중앙을 표준으로 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역문화는 주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장소의 고유한 특질들을 상상적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하지만 근대가 장소를 공간으로 추상화시키면서 장소성에 기반한 지역문화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른 안타까운 현상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적 문화전통의 붕괴입니다.

지역문화의 공동체성은 두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레문화에는 농민들의 공동체적 삶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공동체는 생활공동체이고 마을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근대의 이익사회화 경향에 따라 이러한 공동체는 사라졌고, 그 흔적들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두레가 잘 보여주듯 생활공동체, 마을공동체는 상명하달의 시스템이라기보다는 동의와 협력에 기초한 네트워크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활적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는 단순히 전근대적 조직이 아니라 근대의 한계를 넘어설 잠재력을 지닌 결사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후기 근대로 진입하면서 심각한 정체성과 주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후기 근대의 한국사회는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이 극단화된 사회입니다.

전근대적인 것, 근대적인 것, 탈근대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로 인해 한국인들은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탈근대와 탈경계의 추세 속에서 근대적 주체성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지만, 새로운 주체성은 준비되어 있지 못한 상태인 것입니다.

근대주의의 패러다임에 속박되어 있는 주류 문화로는 이러한 정체성과 주체성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역문화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특히 지역문화의 공동체적 전통은 후기 근대의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과 주체성의 위기를 해결해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생활공동체, 마을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을만들기 운동이나 생활협동조합 운동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이 운동들은 대개 주변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지방 소도시까지 포함해 주변부 지역들에는 공동체적 전통이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 운동들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레와 같은 공동체적 문화전통들을 적극 참조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전통을 추수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후기 근대의 조건에 맞게 전통을 조정하고 변용해야 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적 문화전통과 대화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전통 속에 후기 근대의 정체성과 주체성의 위기를 해결할 지혜가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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