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대안문화 연구소 : 익산시 구술사 DB

TEL 063-850-5275
FAX 063-850-7311

칼럼

> 간행물 > 칼럼
크게 작게 인쇄

구술사, 찌질이들이 쓰는 챔피언의 기록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 박태건 수석연구원의 ‘지역 정체성 찾기’

▲ 구술사, 찌질이들이 쓰는 챔피언의 기록


런던에서 날아 온 새벽의 낭보가 열대야에 지친 마음을 달랜다. 금메달의 획득이 올림픽의 정신은 아닐지라도 역사는 챔피언만 기억하기에 2위와 3위는 울음을 터트린다.

평생 2인자였던 송대남의 금메달에 열광하는 것은 ‘기록되지 않는 역사’의 주변부가 가진 시련의 스토리를 이해하기 때문. 올림픽의 감동 스토리도 결국 챔피언의 기억이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수많은 ‘찌질이’들의 땀과 눈물은 잊혀지고 말 것인가?

구술사는 챔피언의 배후에 주목한다. 챔피언의 연습 파트너로 이력을 마감한 이 땅의 수많은 필부들 이야기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 바로 구술사다.

구술사는 역사의 주변인들의 생애사, 자기보고서, 구술전기, 회상기를 포괄한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와 다투고 썼던 반성문도 일종의 자기의 구술생애사인 셈이다.

그런데 ‘기억의 재현’으로 긴 내용을 전달하는 건 어렵다. 구술이 이야기의 옷을 입게 된 이유다.

오랫동안 ‘새롭게 쓰인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고전이 된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40여명이 1600년의 기억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사마천의 ‘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 역시 주변부의 시각이 기록된 옛 역사다.

이렇듯 구술사의 전통은 역사 이전부터 현재를 연결한다. 청나라 시대 포송룡이 쓴 ‘요재지이’란 책은 ‘배은망덕한 서생’ ‘은혜 갚는 여우’등 민간에서 전해오는 신비한 이야기에 당대의 사회적 배경을 그려냈다.

우리지역에 전승된 대표적인 집합기억이 ‘서동요’다. 이 오래된 구술은 당대의 정보통신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독도는 우리 땅’같이 긴 가사를 외울 수 있는 건 노래가 이야기를 만나 전달력이 상승됐기 때문.

서동이라는 출생이 범상치 않았던 ‘엄친아’의 이야기는 삼국시대의 인터넷 댓글처럼 재생산되며 천 년 전 이 땅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권력자의 말이 법이라면 민중들의 권력은 언론에서 나오는 것. 그래서 권력자는 예로부터 언론부터 틀어쥐려 했던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어머니가 서울의 남쪽 못가에서 집을 짓고 홀어미로 살더니 용과 상관하여 그를 낳았는데 어릴 적 이름은 서동이다.”(삼국유사) ‘용과 상관’했다는 건 정상적인 혼인이 아니었다는 말. 일명 ‘후레자식’ 이었겠다.

아비가 없다는 건 출생성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 혈연과 지연의 카르텔을 뚫고 성공하기 위해서 서동은 주몽과 김수로의 신화처럼 하늘에 연줄을 대었다.

그리고 서동처럼 출생성분이 빈약한 당대의 비주류들은 ‘작당’하여 후백제의 영광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진정한 역사의 원동력은 이 땅의 비주류들이 기억하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에서 기원하는 건 아닐까?

금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가 공인된 역사라면 땀에 젖은 운동복을 싸고 있을 비주류들이 어머니의 품에 풀어놓는 ‘말하지 못한 기억’은 2012년 우리나라의 또 다른 현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역사다.

하여 이번 여름 원광대 대안문화연구소는 익산지역을 누비며 이 땅의 숨겨진 이야기를 채록할 예정이다. 이 작업이 익산의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코멘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