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대안문화 연구소 : 익산시 구술사 DB

TEL 063-850-5275
FAX 063-850-7311

칼럼

> 간행물 > 칼럼
크게 작게 인쇄

‘나가수’와 추억으로서의 과거

‘나가수’와 추억으로서의 과거

-하정일 소장-

요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가 꽤 인기라고 합니다. 특히 얼마전에 임재범이라는 가수가 1등을 하면서 장안의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나는 임재범을 가창력이 뛰어난 90년대의 가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제 아내가 그의 팬입니다) 그래서 기대를 갖고 재방송을 보았습니다. 나는 ‘나가수’의 서바이벌 경쟁방식이 너무 흉흉해 그 프로를 보지 않았더랬는데, 임재범의 노래를 한 번 들어보고 싶어 큰 맘 먹고 보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내 기대와는 달리 임재범의 노래는 엉망이었습니다. 특히 고음부의 처리가 그러했습니다. 각 소절 끝부분의 고음부에만 가면 호흡이 흔들렸고, 호흡이 흔들리니까 당연히 음정도 흔들렸습니다. 바이브레이션으로 커버하려 했지만, 그것으로도 안되니까 결국 샤우팅으로 황급히 봉합하더군요. 민망하고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방청객들이 그 노래를 들으며 여기저기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몇 번을 다시 들어보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90년대 임재범의 가창력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때와의 격차는 아득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걸까요. 그것은 방청객들이 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임재범이 아니라 90년대의 임재범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추억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무대 위의 임재범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 거지요. 현재의 임재범은 사실상 부재 상태였던 셈입니다. 무대 위의 임재범이라는 기표를 통해 90년대의 임재범이라는 기의를 보고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기표와 기의의 극심한 괴리. 이는 과거를 추억으로 호명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추억으로만 기억하는 한 현재와의 연계는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과거가 현재를 향해 열려 있지 않고 과거 그 자체에 닫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거란 일종의 절대 과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절대 과거는 모든 시공간적 맥락들이 사상된 채 이상화되고 자족화된 자폐적 과거입니다. 나는 ‘나가수’에서의 임재범의 역할이 현재의 삶에 지치고 좌절한 90년대 세대에게 그러한 의미에서의 절대 과거를 제공해주는 것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임재범을 통해 찾으려 한 추억으로서의 과거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현상을 이른바 쎄씨봉 열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쎄씨봉 열풍의 담당층이 주로 70년대 세대라는 점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임재범 신드롬의 기반이 90년대 세대라면, 쎄씨봉 열풍의 배후에는 70년대에 청년시절을 보낸 50대가 있다는 겁니다.

추억으로서의 과거는 철저하게 기획된 상품입니다. 절대 과거에 취해 누추한 현재를 잊고 싶은 사람들을 타겟으로 한 상품인 것이죠.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과거를 왜곡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언론인 김선주 씨가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쎄씨봉 열풍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감동도 재미도 느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쎄씨봉 열풍이 70년대가 수많은 금지곡을 양산했던 끔찍한 유신 독재의 시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괄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쎄씨봉 추억담에는 김민기로 상징되는 저항과 수난의 역사가 쏙 빠져 있다는 거죠. 김민기가 언급되긴 하더군요. 쎄씨봉의 한 부분으로서만. 나는 과거를 턱없이 이상화하는 그 프로를 보며 김선주 씨가 느꼈을 황당함과 불쾌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를 추억으로 호명하는 요즈음의 열풍에 80년대는 제외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80년대는 추억으로서의 과거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80년대를 휩쓸었던 문화는 주지하듯이 민중문화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중문화를 갖고는 과거를 이상화하고 자족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민중문화 자체가 원천적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문화이기 때문이죠. 민중문화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 문화의 시공간적 맥락들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 맥락들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거를 이상화하고 자족화시키는 것이, 곧 절대 과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겁니다.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그러면 이 모든 사태가 자본과 시장주의 탓 만이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중문화운동이 갑자기 힘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90년대의 끔찍한 ‘마녀사냥’도 한몫 단단히 했지만, 민중문화운동의 문제점도 그 못지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 말은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많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은 분명한 내적 필연성과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당대 민중의 소망과 요구에 대한, 그 시대로서는 최선의 응답이 담겨 있었다는 겁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9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이 80년대의 반복으로 시종했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자기갱신이 부족했다는 거죠.

9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이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과거의 반복에 자족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억으로서의 과거도 현재성을 지닐 수 없지만, 반복으로서의 과거도 현재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9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을 대표하는 꽃다지 공연을 보면 그 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공연을 동영상으로 보면, 80년대의 판박이입니다. 90년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문화산업의 시대, 스펙타클의 시대 아닙니까. 당시 HOT인가 GOD인가의 노래를 둘러싸고 표절 시비가 벌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문학계에서도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인화는 자신의 표절 행위를 포스트모더니즘 특유의 혼성모방이라고 강변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SM의 이수만은 대중문화는 예술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이므로 표절 여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제라고 일축했습니다. 재미만 제공해주면 됐지 표절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수만의 발언이 훨씬 정직하고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된 겁니다.

여기에 맞서 대중과 호흡하려면 9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은 뼈를 깎는 자기갱신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80년대를 반복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90년대의 대중적 감수성과 90년대의 새로운 민중성을 표현할 수 없었고, 당연히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된 겁니다. 90년대의 꽃다지 공연을 보면,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교회 합창단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80년대의 민중문화운동 역시 아마추어 수준이었지만, 당시는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90년대는 다릅니다. 문화사업의 시대, 스펙타클의 시대, 엔터테인먼트의 시대 아닙니까. 거기에 문화산업으로, 그러니까 스펙타클과 엔터테인먼트로 맞설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그럴 돈도 없는데다가 설혹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랬다가는 자본과 싸운다면서 뒷문으로 자본을 불러들이는 꼴이 될 테니까요. 서구에서 대중문화의 저항성을 상징하던 록이 70년대에 그렇게 된 것처럼 말이죠.

가능한 길은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실력으로 승부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작곡과 편곡, 가창력과 연주력, 안무와 무대 미술 등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프로가 되었어야 한다는 거죠. 90년대의 임재범이 그러했듯이. ‘나가수’가 9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HOT나 GOD가 아닌 임재범을 추억으로서의 과거로 호명한 것도 당시의 임재범이 보여주었던 탁월한 가창력이 만들어낸 후광 효과를 노렸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9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은 기초체력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초체력이 부실하니 새로운 감수성과 새로운 민중성의 계발도 불가능했던 겁니다. 운동선수들을 보더라도 기초체력과 기본기가 튼실해야 실력 향상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9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은 기초체력과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80년대를 지루하게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공룡의 운명에 처하게 된 겁니다.

하나만 더 지적하자면 시장의 문제가 있습니다. 대안문화의 유통은 자본주의 시장과는 다른 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한국사회에도 자본주의 시장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이를테면 재래시장도 존재합니다. 브로델에 따르면, 재래시장은 자본주의 시장과는 다른 시장입니다. 민중의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죠. 요즈음 재래시장이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메트로폴리스의 거주민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소도시나 시골에서는 재래시장이 생활의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내가 근래에 지역의 대안적 잠재력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경우에는 그러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화 생산자들이 문화산업에만 탐닉하기 때문이죠. 홍대앞과 인디밴드를 거론하기도 합니다만, 나는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민중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대앞은 문화산업으로 진출하기 위한 대기소와 같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코멘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