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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밤바다와 구룡마을 대나무 숲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 박태건 수석연구원의 ‘지역 정체성 찾기’
▲ 여수 밤바다와 구룡마을 대나무 숲


지난 주말, 여수 엑스포, 나도 갔다. 아마도 버스커버스커의 감미로운 노래 ‘여수 밤바다’를 반복해서 들을 때 부터였을 것이다.

조직위에서 특별히(?) 준비했다는 캠핑장을 예약하면서 1박 2일의 야생의 휴가를 보낼 로망에 부풀었다.

장비 구입에 대한 부담으로 주저했던 캠핑의 로망을 이참에 풀 요량이었다. 그런데 여수에 도착해서부터 예상이 빗나갔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곳은 황량한 자갈밭. 인근 석산에서는 돌을 캐다 만 흔적이 선명했다. 덤프트럭이 지나다녔을 법한 그곳에 수십여 동의 천막이 쳐 있었다.

배정받은 텐트를 찾으며 나는 서부개척시대의 금광 노동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장고와 서부총잡이들이 튀어나와 총을 뽑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텐트촌이었다.
엑스포 행사장 입구는 야간 개장시간에 맞춰 입장하려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엑스포의 상징인 빅오(Big-O)가 보였다.

그 후, 엑스포에서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평균 2시간 이상씩 줄을 섰으나 가상현실이 더 많은 ‘세계박람회장’은 사람들을 소외시켰고 웅장한 크기의 빅오에서 쏘아대는 레이져가 행사장 곳곳을 비추고 있는 동안 나는 점점 지쳐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캠핑장으로 돌아오자 끔찍한 소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정 받은 나의 숙소인 텐트-B2에서 열 걸음 밖에 성능 좋은 스피커를 구비한 술집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여수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자장가로 듣고 싶었던 것은 사치였을까? 술에 취한 몇 몇이 무대로 나가서 ‘나가수 스타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울했다. 이런 건 아니었다. 내가 꿈꿨던 여름휴가는. 불과 이틀간 이었지만 이번 여름휴가는 2주일은 된 듯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선풍기 틀어놓고 ‘집이 최고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금마면으로 구술 채록 작업을 나가던 길에 구룡마을 입구에서 빨간 고무함지를 든 할머니를 만났다.

말복 더위의 한 가운데서 그녀는 ‘고무 다라이’라 불리는 그것을 투박한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순간 나는 엑스포의 스펙타클에서 생의 치열함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1948년 컬럼비아대학 구술사연구소가 설립된 후, 미국의 구술사료수집 활동은 단순히 문화채록사업을 너머 사회적 통합에 기여했다. 이민자, 노동자, 실직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도시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엑스포가 첨단기술의 스펙타클을 보여주는데 급급한 나머지 그늘진 곳이면 어디든 쓰러져 주무시는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반면, 구술사는 기억의 재현을 통해 인간적인 대화를 한다. 민족의 유전자에 흐르는 이야기를 기록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제 아무도 20년 전의 대전 엑스포를 이야기 하지 않듯 여수 엑스포도 곧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익산사람들의 삶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 구룡 마을과 그곳의 배경이 된 대나무 숲은 영원할 것이다.

나는 수많은 댓잎이 파도처럼 일렁이던 그곳에서 엑스포 아쿠아리움의 수족관에서 만난 돌고래의 긴 허밍을 다시 들었다.

구룡마을 어르신들이 자분자분 들려준 이야기는 대나무에 귀를 대고 듣는 바람의 이야기. 우리의 선조들이 상상으로 일으킨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구룡마을 대나무 잎을 흔들고 대나무 관에 청량한 공명을 일으킨다.

대나무에 귀를 대고 있는 동안 나는 어느덧 천 년 전 선화공주의 손을 잡고 사자암으로 오르고 있었다. 먼 훗날, 나이가 들어서 내 아이들에게 다시 들려줄 그 이야기를 생각한다.

아침에 가는 비가 지나갔다. 날이 조금은 서늘해졌다. 금마면 구룡마을 대나무 숲에에도 가는 비가 내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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