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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 후일담 <서동축제와 서동생가>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 장윤준 연구원의 ‘지역 정체성 찾기’

▲ 구술사 후일담 <서동축제와 서동생가>


“조선 중엽 시절에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였다.”

완주군 둔산마을은 전주 최씨의 집성촌입니다. 최만춘의 첫 번째 부인은 조씨로 둔산마을 인근 하천리가 조씨의 집성촌입니다. 최만춘의 두 번째 부인은 배씨인데 둔산마을 근처 상리가 배씨의 집성촌입니다. 제가 이렇게 서두를 길게 쓴 이유는 바로 “전주 서문 밖 30리”로 시작되는 문학 작품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콩쥐 팥쥐’이기 때문입니다. 최만춘은 콩쥐 팥쥐의 친부이며, 그의 두 부인은 조씨와 배씨로 작품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 주변엔 콩쥐 팥쥐와 관련된 지명과 집성촌이 있으며, 이는 ‘학술용역’을 통한 ‘콩쥐 팥쥐 배경마을 고증 학술대회’에서 밝혀진 사실입니다.

사실 제가 완주군 앵곡마을을 콩쥐 팥쥐의 고향으로 지목하였는데, 이 이면에는 김제시와 완주군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습니다. 김제시 역시 금구면 일대를 콩쥐 팥쥐의 고향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논란 끝에 완주군 앵곡마을 일대가 콩쥐 팥쥐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완주군의 발 빠른 대처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완주군 앵곡마을은 콩쥐 팥쥐의 고향이 맞을까요? 사실 ‘고향’이라는 단어보다 ‘발원지’라는 말을 쓰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즉 그 마을에 사는 어떤 작가가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콩쥐 팥쥐’를 집필 했다고 봐야겠지요.

금마면 연동마을은 오금산 밑자락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마룡지가 마을 앞에 있으며, 좌측엔 ‘서동 생가 터’가 있습니다. 마룡지에서 서동의 어머니가 용과 결합하여 서동을 낳았다는 전설, 오금산에서 금을 캐 신라 선화공주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익산 시민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용정마을과 그 주변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이야기의 문화적 인프라가 전혀 구축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용정마을 이장님이신 김기성(64)이장님은 “전국에서 사학과 대학생들이 역사 탐방을 많이 와. 마룡지라든가 서동 생가, 이런것들을 보러 전국적으로 역사 탐방을 많이 오고 있어. 경북대 학생들도 여기 오고, 서울에서도 여기 왔었고…”라고 구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찾아가 본 용정마을의 사정은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학술 답사지로 추천할 만 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올해 익산의 서동축제는 무척 성공적이었습니다. 23만명의 방문객이 서동축제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공적인 축제 뒤에 서동을 ‘축제의 소재’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즉 서동에 대한 ‘본질적 대접’에 대한 아쉬움이 그것입니다. 서동을 진정으로 아낀다면 서동 생가에 대한 복원과 그에 따른 문화적 인프라를 먼저 구축한 뒤 부끄럽지 않은 축제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콩쥐 팥쥐를 앞세워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완주군의 계획은 일시정지 상태입니다. 문화적 개발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광상품화의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익산의 서동생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홍보를 하지 않아도 서동생가를 찾아오는 대학생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공적인 서동축제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서동생가의 복원과 그에 따른 서동축제와의 연계는 그동안 문화제 구역으로 지정되어 고통 받던 주민들에게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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