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대안문화 연구소 : 익산시 구술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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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길에서 만난 가람 이병기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 박태건 수석연구원의 ‘지역 정체성 찾기’
▲ 옛 길에서 만난 가람 이병기


큰 바람 불고, 비가 왔다. 큰 바람이 지나가면 잠재된 것들이 밖으로 드러난다. 인문학이란 ‘뒤를 돌아보는 일’이라고 했던가? 오래 미뤄두었던 것들을 정리하며 그 물건에 담긴 지난 시간을 생각한다.

잠시 갠 날을 받아 금마면 황동마을에 갔다. 황동은 여산 가는 옛 길에 쉼표처럼 자리한 마을이다. 예전엔 9대 만석꾼이 살만큼 넉넉했다고 하나 지금은 몇 가구 되지 않는다. 세월에 퇴색한 페인트가 검버섯처럼 벗겨지는 단층집. 마루에 앉아 조용히 마늘을 까던 이병순씨(83세)는 여산 진사마을 출신으로 가람 이병기 선생의 사촌이다. 선생에 대해 묻자 넓고 큰 어른이었단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듯 육종마늘을 까던 부지런한 손이 잠시 멈춘다. 가람 선생은 익산문화 정체성의 한 뿌리다. 오늘은 돌에서 아름다운 백제의 곡선을 캐내는 마음으로 작고한 가람 선생을 찾아 상상의 구술 기록을 해보기로 한다. 

여산면 원수리 진사동에 있는 가람의 생가는 단정한 선비의 집이다. 정자 앞의 연못을 둘러싼 산수유 나무와 배롱나무, 가지런한 장독대 뒤의 대밭에 이르기까지 은근하고 담백한 생활의 멋을 느끼게 한다. 수우재(守愚齋) ‘어리석음을 지키는 집’이다. ‘빨리 빨리’를 숭배하는 속도전의 시대. 우직함으로 경계를 삼자는 뜻일까? 가람 생가 바로 앞산은 ‘촉날’이라는 옛 이름을 가졌다. 국도변에 있는 ‘개산’을 덮치려는 호랑이를 경계하는 모양이란다. 천 년도 더 된 옛 길을 지키고 선 충직한 개산과, 그것을 노리는 미·소·일·중의 호랑이 아.가.리. ‘촉날’. 그것은 각성한 자의 긴장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혼자라도 지켜내겠다는 선비의 강개가 느껴진다. “무른들이라고 있어. 그전에 가람 박사가 뭣 때문에 무른들이라고 했다는데 내가 그 얘기를 귀담아 듣지를 않아서 몰라.”(신막마을 김길주 씨) 가람 선생은 옛 지명과 이야기를 모은 책들을 수집하느라 심혈을 기울였다. 돈이 되지 않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선비의 아내는 고달팠겠지? 

“빼어난 가는 닢새 굳은 듯 보드롭고 / 가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 본대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어 사느리라” 「난초. 4」전문

일제에 의해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가람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은 저마다의 흔적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슴 속의 뜨거운 불길을 난의 품격으로 다스렸던 것일까? 스스로 ‘삼복지인’이라 하여 난복, 술복, 제자복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며 수련을 키우려고 원광대에서 묘목을 받아서 어렵게 꽃을 피우자 어린애처럼 기뻐하던 일화가 <가람일기>에 소개된다. 자연과 사람을 사랑했던 가람. 학술원 회원이 되어 전국적인 활동을 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십년의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술을 끊지 않았다. 그에게 술은 음식이었으며 난은 벗이었다. 중풍으로 언변이 자유롭지 못할 때도 한 문병객에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나는 살고 싶다’는 말을 써 주었던 가람. 그의 유언은 ‘난에 물주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이었을까? 일제 강점기 어두운 국학의 밤을 밝히던 불빛은 그렇게 스러졌다.

구술사는 시간의 정리다. 태풍은 그 흔적을 지워야 비로소 소멸되듯 이야기도 언젠가 쏟아내야 정리된다.(이것을 구술의 인문 치료적 성격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을의 옛 일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허물은 덮어 주고 픈 인정 때문이리라. 옛길에서 가람선생을 만난 구술팀은 결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약탈적 구술 채록’은 사람을 도구화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수단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다짐한다.

황동마을을 나와 여산으로 가는 길목에 가람 선생을 추모하는 문학제 현수막이 길가에 나부낀다. 여산읍내 입구의 여산남초등학교에는 동요로 널리 불리는 ‘별’이 새겨진 가람시비와 가람의 흉상이 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우리가 아직 순수했을 때 불렀던 동요가 입가에 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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