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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의 추억과 문화의 정치성

최동원의 추억과 문화의 정치성

-하정일 소장-

얼마전에 최동원이라는 야구선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동원은 불세출의 투수였습니다. 내가 그의 경기장면을 처음 본 것은 어느 전국대회에서 최동원의 경남고가 군산상고와 벌인 결승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고교야구의 인기가 워낙 높아 텔레비전에서 중계를 했었지요. 최동원의 강속구에 군산상고 타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습니다. 야구를 꽤 좋아했던지라 야구시합을 즐겨 보았지만, 그런 공은 처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마구였습니다. 직구의 속도와 커브의 각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후 나는 최동원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내가 연세대를 선택한 데도, 물론 김수영이 연희대(연세대 전신) 출신이란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최동원이 연세대에 간 것도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연대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당시 최강이던 경리단과의 시합이었습니다. 그 경기에서 당대 최고의 타자였던 장효조가 최동원의 마구에 멍하니 당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 후의 인터뷰에서 장효조는 “왜 최동원의 공을 치지 못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보여야 치지. 먼지가 일어서 말이야.”라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최동원의 강속구에 땅에서 먼지가 이는 장면을 보았던 것 같았습니다. 착시였을지도 모릅니다만, 그후 나는 최동원의 강속구를 스모그볼이라고 나름대로 명명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스모그볼이라니!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마구가 실제현실에 등장한 겁니다. 사실 최동원의 투구폼 자체가 만화적이었죠. 그가 공을 던지기 전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킥킹하는 모습은 적어도 한국야구의 역사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으니까요. 흔히 최동원과 선동열을 비교하곤 하는데, 나는 그런 식의 단순비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최동원과 선동열이 맞대결을 벌이던 시기-1승 1무 1패라더군요-는 최동원의 전성기가 지난 때였습니다. 전성기의 선동열과 쇠퇴기의 최동원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혼자서 4승을 챙겼던 1984년의 한국시리즈가 최동원 최후의 절정기였고, 선동열과의 맞대결은 그 후의 일이었죠. 선동열이 과연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누가 한국야구 최고의 투수였는지는 명약관화해진다고 봅니다.

최동원에 대한 나의 마지막 추억은 1988년의 선수협의회 결성사건입니다. 최동원은 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하고 회장까지 맡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의 소극성과 구단의 강경탄압으로 선수협의회는 좌초되고 말았죠. 선수협의회를 주동했던 최동원과 김용철이 롯데구단에서 방출되었고, 최동원은 1년 후인가 은퇴합니다. 당시 나는 구단의 행태도 어이없었지만, 선수들의 소극성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특히 선동열 같은 유명 스타들의 소극적 처신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잘 살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요. 후보 선수나 2군 선수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겠지요. 10여 년 후 선수노조 결성사건 때도 이승엽 같은 선수들이 똑같은 처신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동열과 이승엽을 싫어합니다. 야구선수 이전에 인간으로서 기본이 안됐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동원이 좌절하고 은퇴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프로야구에 대한 나의 관심은 오로지 최동원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런 지역적 연고가 없는 롯데를 좋아했던 것도 단지 최동원이 그 구단 선수였기 때문이었고, 삼성을 잠깐 동안이지만 응원했던 것도 그 팀이 롯데에서 방출된 최동원을 받아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최동원은 내게 야구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셈입니다. 최동원의 서거 소식에 형언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낀 것도 그래서일 터입니다. 롯데구단에서 최동원을 기념하는 이런저런 행사들을 벌인다고 하더군요. 명예감독으로 추대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롯데는 최동원을 기릴 자격이 없는 팀입니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추악한 잘못부터 반성하는 것이 망자(亡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요. 하긴 롯데가 최동원을 기념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것이 장사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시장논리에 따른 행동인 거죠.

돌이켜보면, 프로야구는 출범할 때부터 시장논리와 정치논리가 뒤범벅되어 있었습니다. 전두환이 재벌들을 불러 모아 하룻밤 사이에 뚝딱 프로야구단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전두환 정권은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를 대중의 탈정치화에 적극 활용한 정권이었습니다. 관제 축제인 국풍81이 그랬고, 프로야구 역시 마찬가지였죠. 특히 프로야구는 광주학살에 대한 전라도 주민들의 분노를 희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었죠. 당시 해태와 삼성의 경기는 거의 전쟁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일종의 대리전쟁이었습니다. 해태는 광주를 상징했고, 삼성은 전두환 정권을 상징했으니까요. 80년대에 광주시민들은 해태가 삼성을 꺾는 장면을 보며 아마도 전두환 정권을 응징한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꼈을 겁니다. 그렇게 보면, 프로야구는 대중의 정치적 분노를 대리충족을 통해 탈정치화시키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나 또한 거기에 놀아난 거죠.

대중문화가 대중을 탈정치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제 대중문화론의 상식입니다. 80년대가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상식이 여전히 먹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 주체가 국가에서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가령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나가수’는 사실 대단히 정치적인 프로그램입니다. 경쟁주의를 내면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거든요. 경쟁주의란 시장주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나가수’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란 제로-썸 게임을 엔터테인먼트화한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경쟁주의와 시장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까지도 이 프로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들의 열광이 경쟁주의와 시장주의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중문화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원래 볼거리일 뿐이지’, ‘대중문화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겠어’, ‘대중문화는 그냥 보고 즐기면 되는거야’ 같은 선입견 말입니다. 나는 이러한 선입견이 아도르노적 의미의 엘리트주의와는 다른, ‘거꾸로 된 엘리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아도르노가 대중문화를 중우정치의 첨병으로 혐오했다면, 이들은 대중문화를 무의미한 볼거리로 깔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그냥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이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대중문화는 대중의 주체성을 좌지우지하는 문화입니다. 대중은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형성해갑니다. 문화산업의 시대가 되면서 대중문화의 주체 구성력은 더욱 심대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대중문화야말로 최고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문화를 고민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중문화의 주체 구성력이 막강해진 만큼 반체제적/비체제적 주체성을 견인하는 새로운 문화의 필요성도 그에 정비례해 절실해졌기 때문이죠.

최동원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선수협의회 결성사건에는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대안문화적 정치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최동원은 대학 시절에도 단체기합을 거부해 파장을 일으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단체기합을 주도한 이가 박철순이었죠.(그래서 나는 박철순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최동원은 어린 시절부터 비체제적 주체성을 지니고 있었던 겁니다. 최동원이 은퇴 후 김영삼의 민자당을 거부하고 꼬마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의원 선거에 나섰던 것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선수협의회 결성사건을 87년 민주항쟁의 도도한 물결이 프로야구에까지 밀려들면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구단의 명령대로 움직이던 프로야구 선수들이 ‘나도 주체다’라고 선언한 사건이었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프로야구를 탈정치적 주체화의 도구로 이용하려던 전두환 정권의 의도에 대한 정면도전이었습니다. 선수협의회에 대한 잔혹한 탄압도 아마 그때문이었을 터입니다.

최동원은 갔지만, 프로야구는 거의 국민스포츠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프로야구에 관심이 없습니다. 최동원 때문만은 아닙니다. 프로야구가 한국사회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끔찍한 양극화와 단자화, 그리고 도저한 물신주의. 이것은 프로야구의 현재이자 한국사회의 암울한 현주소입니다. 문화의 정치성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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